〈두 개의 시간〉 10편 시리즈 · ← 이전 편 · 다음 편 → 1편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 8편 · 9편 · 10편
앞편에서는 아이돌 뒤의 어른들을 봤다.
뉴진스 뒤에는 민희진과 방시혁이라는 거대한 이름이 있었다.
리센느 뒤에는 더뮤즈를 만든 사람들, 음악을 만든 사람들, 안원잘부를 만든 사람들이 하나씩 발견됐다.
누군가는 회사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음악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사람을 보여줄 무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돌 주변에는 또 다른 종류의 어른들도 있었다.
노래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춤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아이돌의 이름과 말이 커지는 순간 그 화제성을 자기 세계의 논쟁거리로 가져가는 사람들이다.
뉴진스와 리센느는 이 부분에서도 묘하게 닮았다.
그리고 역시 방법은 정반대였다.
한쪽에서는 국회가 아이돌을 불렀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돌의 유튜브 말 한마디에 정치권이 찾아왔다.
하니와 원이다.
하니가 국회에 나온 날
2024년 10월 15일.
뉴진스 하니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석에 앉았다.
하니는 하이브 사옥에서 다른 팀 매니저가 자신을 두고 “무시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어도어 김주영 대표는 확보된 자료만으로 이를 입증하기 어려웠고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는 취지로 답했다.
연예산업의 괴롭힘과 노동 사각지대를 국회가 다뤄야 한다는 시각이 있었고, 회사 내부 갈등을 국정감사에까지 가져오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 편에서 그 논쟁의 승패를 가릴 생각은 없다.
보고 싶은 것은 하니가 국회에 나타난 뒤 그 주변의 어른들이 무엇을 했는가다.
(출처링크: MBC 스트레이트)
국감장이 아이돌 행사장처럼 변했다
하니가 국회에 도착하자 취재진과 국회 관계자들이 몰렸다.
그리고 더 이상한 장면이 나왔다.
당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 정인섭은 사업장의 중대재해 문제 등과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그런데 대기 중 하니와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이 모습이 알려지자 의원들은 노동자 사망 문제로 증인석에 온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질타했다. 한화오션은 대표이사 명의로 공개 사과했다.
(출처링크: 파이낸셜뉴스)
한쪽에는 노동자의 죽음과 산업재해를 이야기하러 온 사람이 있었다.
한쪽에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말하러 온 아이돌이 있었다.
그런데 둘 사이에서 기념사진이 나왔다.
유명인이 국회에 왔다는 사실이 그 유명인이 왜 왔는지보다 앞에 서버린 순간이었다.
다른 상임위원회는 ‘하니를 만나러 갔느냐’를 두고 멈췄다
같은 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최민희 위원장이 국감 도중 하니를 만나러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놓고 여야가 충돌했다.
최 위원장은 환노위 측이 마련한 면담 장소에 갔지만 속개 시간이 다 돼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방은 이어졌고 회의는 파행을 겪었다.
(출처링크: 경향신문)
(출처링크: YTN)
무슨 문제로 회의가 흔들렸는가.
아이돌 산업의 노동환경 때문인가.
아니다.
누가 하니를 만나러 갔느냐를 두고 싸웠다.
하니는 참고인으로 국회에 왔는데, 어느 순간 국회의원들이 하니를 둘러싼 또 다른 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아이돌을 불러놓고 화살은 아이돌에게 돌아갔다
하니는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됐고 출석했다.
그 뒤 국정감사의 적절성을 둘러싼 비판 가운데 일부는 국회가 아니라 하니 개인에게 향했다.
하지만 어떤 의제로 누구를 부를 것인지 판단한 곳은 국회다.
어른들이 판을 만들었다.
아이돌이 그 판의 얼굴이 됐다.
그리고 비난받기 쉬운 얼굴도 아이돌이었다.
그동안 국회 안에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누가 만나고 왔는지를 두고 싸우고,
유명인의 이름으로 더 큰 뉴스를 만들었다.
하니를 실제 사회 문제의 참고인으로 부른 것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이 국회에 왔다는 사실을 정치적 이벤트로 소비한 것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두 번째 풍경이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2년 뒤에는 원이의 말끝 하나에 어른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2026년.
리센느 원이는 국회에 가지 않았다.
정책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지도 않았다.
그냥 안원잘부를 찍고 있었다.
미나미의 일본 집을 방문했고 조금 무서운 분위기의 방에서 “무섭노”라고 말했다.
몇 초짜리 예능 대사였다.
그런데 그 말 하나가 갑자기 정치적인 단어가 됐다.
경남지역 방송사 PD가 해당 표현을 문제 삼은 뒤 논쟁이 커졌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의문문에 기계적으로 ‘노’를 붙이는 일베식 용법과 영남 방언을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반대편에서는 거제 출신 아이돌의 자연스러운 고향 말투에 정치적 낙인을 찍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러 정치인과 언어 관련 전문가가 논쟁에 들어왔다.
(출처링크: 뉴시스)
노무현.
일베.
지역방언.
세대언어.
정치적 낙인.
원이의 원래 영상에 있었던 말보다 그 말을 설명하는 어른들의 말이 훨씬 길어졌다.
결국 거제시청까지 답해야 했다
논쟁은 정치인의 SNS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국민신문고에는 원이의 고향이자 리센느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거제시에 ‘무섭노’라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묻는 민원이 접수됐다.
거제시는 해당 표현을 경남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방언이자 구어적 표현으로 보며, 특정 정치적 의도가 담긴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처링크: 뉴시스)
(출처링크: 뉴시스 언어기획)
유튜브에서 나온 한마디가 방송사 PD를 지나,
정치인을 지나,
언론과 국민신문고를 지나,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입장까지 만들어냈다.
원이 자신이 해당 표현에 정치적 의도를 담았다고 밝힌 공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정치에 가지 않은 아이돌을 정치가 찾아간 셈이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두 사건 사이에는 거제가 있었다
여기서 묘한 연결고리가 하나 생긴다.
하니와 셀카를 찍었다가 논란이 된 정인섭 사장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이었다.
2년 뒤 정치권의 언어논쟁 한복판에 들어간 원이의 고향 역시 거제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도 없다.
한화오션 때문에 원이 논쟁이 생긴 것도 아니고, 원이 때문에 하니의 국감 사건이 거제와 연결된 것도 아니다.
그냥 우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뉴진스와 리센느가 정치와 어른들의 세계에 휘말린 두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둘 다 거제라는 지명에 닿는다.
한쪽에서는 거제사업장 사장이 하니와 셀카를 찍었다가 질타받았다.
다른 쪽에서는 거제 출신 아이돌의 말끝 하나 때문에 정치권이 논쟁하고 거제시청이 입장을 냈다.
우연인데 묘하다.
이 시리즈 전체가 원래 그런 식이다.
관계없어 보이는 두 팀을 따라가다 보면 계속 이상한 곳에서 선이 만난다.
두 사건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둘을 같은 사건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
하니의 국정감사 출석에는 연예산업의 괴롭힘과 노동권 보호라는 제도적 쟁점이 있었다. 사실관계와 국정감사의 적절성을 두고도 여러 의견이 충돌했다.
원이의 ‘무섭노’ 논쟁은 예능 콘텐츠의 짧은 표현을 두고 지역방언과 인터넷 정치언어의 경계가 문제가 된 사건이었다.
같지 않다.
하지만 두 장면을 함께 놓으면 기묘하게 같은 풍경이 보인다.
아이돌보다 아이돌 주변의 어른들이 훨씬 시끄럽다.
하니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했다.
원이의 말은 더 짧았다.
“무섭노.”
그런데 그 뒤에 붙은 해설은 며칠을 갔다.
아이돌 이름은 너무 좋은 확성기다
‘영남권 젊은 세대의 노 어미 사용’이라고 토론하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제목에 ‘리센느 원이’가 들어가면 사람이 몰린다.
‘연예산업의 노동환경’이라는 주제보다 ‘뉴진스 하니 국정감사 출석’이 훨씬 큰 뉴스가 된다.
유명인의 이름은 어떤 메시지든 멀리 보내는 확성기다.
그래서 정치도,
언론도,
SNS도 그 이름을 좋아한다.
문제는 확성기를 쓰다 보면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하니는 ‘K팝 노동 문제’가 된다.
원이의 말은 ‘일베와 사투리 논쟁’이 된다.
사람보다 그 사람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중요해진다.
결국 가장 이상했던 것은 아이돌이 아니었다
하니가 국회에 출석한 것이 옳았는지,
원이의 표현을 어떤 언어학적 범주로 설명해야 하는지,
그 문제들은 각각 따로 논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보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다.
왜 젊은 아이돌의 말과 얼굴이 어른들의 정치적 논쟁에서 그렇게 좋은 재료가 되는가.
국정감사라는 판을 만든 것은 어른들이었다.
아이돌의 짧은 말을 진영의 언어로 키운 것도 어른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말의 한가운데에는 하니와 원이의 얼굴이 있었다.
이번에도 관계없어 보이는 두 선은 이상한 지점에서 만났다.
거제였다.
각 사건의 쟁점과 입장은 서로 달랐다.
하지만 한 발 뒤에서 보면 공통된 풍경 하나가 남는다.
젊은 아이돌 하나를 가운데 세워놓고, 어른들이 그 주변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작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정말 그것이었을까.
다음 편에서는 소란을 잠시 끄고 두 팀의 음악으로 돌아간다.
뉴진스가 만든 공기와 리센느가 남긴 향을 들어볼 차례다.
이 편에서 확인한 자료
- MBC 스트레이트: 하니 국감과 국회 안팎의 풍경
- 파이낸셜뉴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의 셀카와 회사 사과
- 경향신문: 하니 면담 의혹을 둘러싼 과방위 파행
- YTN: 최민희 위원장 해명과 과방위 공방
- 뉴시스: 조국 전 대표의 ‘무섭노’ 관련 발언
- 뉴시스: 국민신문고 민원과 거제시 입장
- 거제시: 리센느와 거제 관광 홍보 협업
전체 목차
- 1편 — 뉴진스와 리센느, 가장 닮았지만 가장 반대편에 선 두 걸그룹
- 2편 — 같은 나이, 다른 시간 — 뉴진스가 무대에 있을 때 리센느 제나는 뉴진스를 추고 있었다
- 3편 — 뉴진스는 기다렸고, 리센느는 사람들에게 찾아갔다
- 4편 — 민지와 원이: 중심을 지킨 맏언니와 문을 연 리더
- 5편 — 민희진·방시혁과 더뮤즈·안원잘부: 아이돌 뒤의 어른들
- 6편 — 아이돌을 정치 쟁점으로 끌어들인 어른들 — 국회의 하니와 ‘무섭노’의 원이
- 7편 — 뉴진스는 공기를 만들고, 리센느는 향을 남겼다
- 8편 — 하니와 미나미: 낯섦을 남긴 사람과 낯섦을 뒤집은 사람
- 9편 — 뉴진스의 문화적 향수와 리센느의 생활적 향수
- 10편 — 명품과 고향: 동경받은 뉴진스, 응원받은 리센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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