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간〉 10편 시리즈 · ← 이전 편 · 다음 편 → 1편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 8편 · 9편 · 10편
민지와 원이는 2004년생이다.
혜인은 2008년생이고, 리센느의 메이와 제나도 2008년생이다.
주민등록증만 놓고 보면 거의 같은 또래다.
같은 학교에 다녔다면 친구가 됐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K팝의 시간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몇 년이 벌어진다.
뉴진스는 2022년 데뷔한 대표적인 4세대 걸그룹으로 불렸고, 리센느는 2024년 ‘5세대 걸그룹 대전’에 뛰어든 신인으로 소개됐다. 아이돌 세대에 공식 판정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언론이 두 팀을 부른 방식은 분명히 달랐다.
(출처링크: 연합뉴스TV)
(출처링크: 리센느 데뷔 쇼케이스 보도)
나이는 같은데 세대가 다르다.
이 이상한 한 문장 안에 두 그룹의 시간이 거의 다 들어 있다.
가영은 뉴진스의 〈OMG〉를 추고 있었다
그 시간 차를 한 장면으로 압축한 영상이 있다.
2023년 1월, 경주의 프리미엄 댄스 스튜디오는 뉴진스 〈OMG〉 커버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설명란에는 다섯 명의 출연자 중 하나로 “가영 Gayeong(15)”이 적혀 있다. 지금의 리센느 막내 제나, 김가영이다.
(출처링크: PREMIUM DANCE STUDIO 공식 영상)
(출처링크: 뉴시스: 제나의 본명과 중학생 시절 영상)
그때 뉴진스는 이미 〈Attention〉과 〈Hype Boy〉로 차트 상위권을 장악한 스타였다.
가영은 그들의 안무를 추고 있는, 영상 설명란에 15세로 표기된 학원생이었다.
그런데 고작 1년여 뒤, 가영은 ‘제나’라는 이름으로 리센느에서 데뷔했다.
뉴진스가 무대 위에 있을 때, 리센느의 미래 멤버는 학원에서 뉴진스를 추고 있었다.
두 팀이 닮아서 만든 설정이 아니다.
인터넷에 그대로 남아 있던 장면이다.
뉴진스는 완성된 첫 장면으로 나타났다
대중이 처음 뉴진스를 만난 방식부터 이상했다.
멤버 하나씩 얼굴을 익히게 하는 긴 티저 기간 대신 어느 날 〈Attention〉 뮤직비디오가 먼저 나왔다.
다섯 명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노래부터 들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알고 있었다.
노래도 준비돼 있었다.
안무도 준비돼 있었다.
스타일과 앨범 디자인과 콘셉트도 이미 완성돼 있었다.
그리고 등장하자마자 잘됐다.
(출처링크: 연합뉴스)
그래서 대중에게는 이런 착시가 생기기 쉽다.
쟤들은 원래 잘했던 애들 아닌가?
완성된 다섯 명을 어디선가 갑자기 데려온 것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뉴진스에게 과거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대중에게 과거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에 가깝다.
뉴진스 멤버들은 데뷔 이전부터 연습생으로 훈련받았고, 선발과 평가를 거쳤다.
하니는 호주에서 K팝 커버댄스팀으로 활동했고 2019년 글로벌 오디션을 거쳐 한국에 왔다. 민지와 하니는 데뷔 전인 2021년 BTS의 〈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에도 짧게 등장했다.
(출처링크: Teen Vogue)
(출처링크: VnExpress)
다만 우리는 그 시간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다.
누가 월말평가에서 몇 등을 했는지 모른다.
누가 울었고, 누가 포기할 뻔했고, 누가 데뷔조에 마지막으로 들어갔는지 대중은 거의 보지 못했다.
뉴진스는 실패 가능성이 없었던 팀이 아니다.
우리가 그 실패 가능성을 거의 보지 못했을 뿐이다.
뉴진스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땅속에서 자라는 시간을 우리가 못 봤다.
리센느는 성공하고 나니 과거가 자꾸 나왔다
반대편에서는 성공하자 인터넷의 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나미의 오디션 프로그램 시절이 나왔다.
제나의 서바이벌 참가 시절이 나왔다.
연습생 영상과 커버 무대와 작은 무대가 다시 불려 나왔다.
말 그대로 파묘가 시작됐다.
미나미는 MBC 〈방과후 설렘〉에 출연했고, 제나는 채널A 〈청춘스타〉에 참가했다. 두 사람의 데뷔 전 방송 장면은 리센느가 유명해진 뒤 공식 방송사와 리센느 채널에서도 다시 조명됐다.
(출처링크: MBC 공식 영상)
(출처링크: 리센느 공식 영상)
뉴진스의 데뷔 전이 두꺼운 커튼 뒤에 있었다면, 리센느의 데뷔 전은 인터넷 곳곳에 흩어진 영상파일처럼 남아 있었다.
뉴진스는 완성되고 나서 세상이 봤다.
리센느는 성공하고 나서 미완성의 시간이 발굴됐다.
같은 나이인데 한쪽은 이미 기준이었다
뉴진스 원년 멤버들의 출생연도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다. 민지는 2004년생이고 혜인은 2008년생이다.
리센느 역시 2004년생 원이를 시작으로 2006년생 리브·미나미, 2008년생 메이·제나로 구성돼 있다.
(출처링크: 뉴진스 공식 프로필)
(출처링크: 더뮤즈 리센느 프로필)
즉 두 팀 사이에 세대 차이라고 부를 만한 큰 나이 차이는 없다.
그런데 한쪽은 이미 스타였다.
다른 한쪽은 아직 스타를 꿈꾸는 시간에 있었다.
뉴진스가 〈Hype Boy〉, 〈Ditto〉, 〈OMG〉를 내놓고 또래 걸그룹과 연습생들에게 새로운 기준처럼 보이던 시기에, 리센느가 될 멤버들은 아직 오디션 참가자이거나 연습생이거나 데뷔 전 지망생이었다.
가영의 〈OMG〉 커버는 이 시간 차가 추상적인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장면을 리센느 멤버 전원의 서사로 부풀릴 필요는 없다. 확실한 것은 제나 한 명의 직접 기록과 두 팀 전체의 데뷔 시점이다.
한쪽은 이미 또래들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 있었다.
다른 한쪽은 아직 그 무대에 올라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등록상으로는 동년배.
K팝 역사에서는 선배와 후배.
두 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 두 해가 너무 컸다.
뉴진스는 맏언니가 고3 나이일 때 성공했다
뉴진스가 2022년 데뷔했을 때 팀의 맏언니 민지는 2004년생이었다.
한국 학교연령으로 보면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막내 혜인은 2008년생이었다.
당시 뉴진스는 전원 10대 그룹으로 소개될 정도로 어린 팀이었다.
즉 뉴진스는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조차 고3 나이일 때 성공했다.
보통 고3이면 대학을 갈지, 무슨 일을 할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도 잘 모르는 나이다.
그런데 뉴진스는 그 나이에 전국적인 인지도와 1위와 해외의 관심과 엄청난 기대를 한꺼번에 받았다.
성공이 너무 일찍 왔다.
그래서 실패하며 배울 시간보다 성공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시간이 먼저 시작됐다.
리센느는 막내들이 고3 나이가 되어서야 성공했다
리센느가 2026년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원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메이와 제나는 2008년생으로, 한국 학교연령으로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
정확히 반대의 문장이 만들어진다.
뉴진스는 맏언니가 고3 나이일 때 성공했다.
리센느는 막내들이 고3 나이가 되어서야 성공했다.
같은 2004년생부터 2008년생까지의 멤버들로 이뤄진 두 팀인데 성공의 시계는 반대편에 있었다.
뉴진스가 받았을 압력은 너무 빨리 성공해서 생기는 압력에 가까웠을 것이다.
리센느가 견뎌야 했을 압력은 성공이 오지 않는 시간을 버텨야 하는 압력에 가까웠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당사자의 마음을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팀이 놓였던 상황의 차이를 보는 이야기다.
한쪽은 성공한 뒤 버티는 법을 배웠다.
다른 한쪽은 버틴 뒤 성공하는 법을 배웠다.
전국의 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룹이 뜨고 나면 사람들은 과거 영상을 찾는다.
“원이 옛날에 뭐 했지?”
“미나미는 〈방과후 설렘〉 때 어땠지?”
“제나는 〈청춘스타〉 때 몇 살이었지?”
그러다 보면 지금은 차트 상위권에 있는 아이가 몇 년 전 작은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 리센느는 성공하면 할수록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가 더 많이 발굴되는 팀이 된다.
이것도 뉴진스와 정반대다.
뉴진스도 연습했고 기다렸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대중은 어디를 파야 하는지 몰랐다.
과거가 거의 비공개에 가까웠으니까.
반면 리센느의 과거는 이미 인터넷 곳곳에 묻혀 있었다.
사람들이 삽만 들면 됐다.
고생의 양이 아니라 모양이 달랐다
뉴진스가 큰 회사에서 데뷔했고 준비과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연습생 생활이나 부담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빠른 성공에는 또 다른 종류의 잔혹함이 있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실패하며 배우는데, 이들은 실패하는 모습조차 세계가 볼 수 있다.
리센느가 늦게 성공했다고 해서 기다린 시간이 자동으로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니다.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데뷔를 준비하고, 데뷔한 뒤에도 크게 알려지지 않는 시간은 낭만이 아니라 불안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누가 더 고생했는지를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생의 모양이 달랐다는 이야기다.
같은 나이였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았다
결국 이 편에서 중요한 것은 4세대냐 5세대냐가 아니다.
대기업이냐 작은 회사냐도 아니다.
시간이다.
한쪽은 너무 일찍 세상의 기준이 됐다.
다른 한쪽은 그 기준들이 만들어지는 동안 몇 년을 더 기다렸다.
한쪽은 성공한 뒤 버티는 법을 배웠다.
다른 한쪽은 버틴 뒤 성공하는 법을 배웠다.
뉴진스가 성공했을 때 팀의 가장 나이 많은 멤버가 고3 나이였다.
리센느가 성공했을 때 팀의 가장 어린 멤버들이 고3 나이가 됐다.
두 팀의 나이 차이는 거의 없었다.
시간만 달랐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시간이 대중을 만나는 방식으로 어떻게 갈라졌는지 본다.
뉴진스는 기다렸고,
리센느는 사람들에게 찾아갔다.
이 편에서 확인한 자료
- 연합뉴스TV: 뉴진스 등 4세대와 5세대 걸그룹 구분
- 리센느 데뷔 쇼케이스: 5세대 걸그룹 대전 참가
- 연합뉴스: 뉴진스의 데뷔 방식과 초기 차트 성과
- Teen Vogue: 하니와 민지의 BTS 뮤직비디오 출연
- MBC 공식 영상: 미나미의 〈방과후 설렘〉 시절
- 리센느 공식 영상: 미나미·제나의 데뷔 전 방송 이력
- PREMIUM DANCE STUDIO: 2023년 뉴진스 〈OMG〉 커버에 출연한 가영
- 뉴시스: 제나의 본명과 중학생 시절 영상
- 뉴진스 공식 프로필
- 더뮤즈: 리센느 멤버 구성
전체 목차
- 1편 — 뉴진스와 리센느, 가장 닮았지만 가장 반대편에 선 두 걸그룹
- 2편 — 같은 나이, 다른 시간 — 뉴진스가 무대에 있을 때 리센느 제나는 뉴진스를 추고 있었다
- 3편 — 뉴진스는 기다렸고, 리센느는 사람들에게 찾아갔다
- 4편 — 민지와 원이: 중심을 지킨 맏언니와 문을 연 리더
- 5편 — 민희진·방시혁과 더뮤즈·안원잘부: 아이돌 뒤의 어른들
- 6편 — 아이돌을 정치 쟁점으로 끌어들인 어른들 — 국회의 하니와 ‘무섭노’의 원이
- 7편 — 뉴진스는 공기를 만들고, 리센느는 향을 남겼다
- 8편 — 하니와 미나미: 낯섦을 남긴 사람과 낯섦을 뒤집은 사람
- 9편 — 뉴진스의 문화적 향수와 리센느의 생활적 향수
- 10편 — 명품과 고향: 동경받은 뉴진스, 응원받은 리센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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