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툰드라 – 사회담당
강남자곡힐스테이트 분양전환 논란 — 주거 사다리가 끊어진 것인가, 혜택이 권리로 둔갑한 것인가.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왜 우리만 세입자인가
서울 강남구 자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흥미로운 호소문이 등장했다.
강남자곡힐스테이트 505동 장기전세주택 임차인대표회가 2026년 9월 배포한 호소문이다. 이들은 같은 단지의 다른 동들은 분양전환을 마쳤는데 505동 370세대만 여전히 임대주택으로 남아 있다며 자신들에게도 합리적인 분양전환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2015년 6월 입주를 시작했다. 분납임대와 10년 공공임대로 공급된 다른 동들은 분양전환이 완료됐지만, 505동은 장기전세주택이다.
입주민대표회는 같은 시기에 입주해 같은 단지에서 이웃으로 살아왔는데 특정 동만 분양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언뜻 들으면 억울할 법하다.
옆집 사람은 집주인이 됐는데 나는 아직도 세입자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단지를 산책하며 살았는데 10여 년 사이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빠져 있다.
처음부터 서로 다른 계약으로 입주했다는 사실이다.
분양전환을 전제로 공급된 주택에 입주한 사람은 해당 조건에 따라 집을 살 기회를 얻었다. 장기전세에 입주한 사람은 정해진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기회를 얻었다.
서로 다른 계약을 맺었으니 결과도 다르다.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는 이유로 같은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같은 비행기에 탔다고 이코노미석 승객에게 비즈니스석의 서비스까지 제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년 전 3억 원과 지금의 3억 원이 같으냐고?
호소문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집값 상승에 관한 주장이다.
입주민대표회는 지난 10여 년간 서울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분양 세대와의 자산 격차가 10억 원 이상 벌어졌고, 장기전세 만기 때 보증금을 돌려받더라도 주변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집값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오래전 보증금과 지금의 보증금이 같은 구매력을 갖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전세라는 계약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이지, 집값 상승분에 대한 권리가 생긴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20년 전에 3억 원을 빌려줬다. 그 돈을 빌린 사람은 매달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빌린 원금 3억 원을 돌려주려 한다.
그런데 돈을 빌려준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낸다.
“아니, 20년 전 3억하고 지금 3억이 같아?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10억은 줘야지!”
그런 계약이었다면 모를까, 원금의 구매력이 떨어졌다고 채무자에게 일방적으로 10억 원을 요구할 수 있을까?
전세는 물론 일반적인 금전대차와는 다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교환관계는 비슷하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맡기는 대신 그 집에 거주할 권리를 얻는다. 보증금에서 별도의 이자를 받지 않더라도 그 돈을 제공하는 대가로 주거 서비스를 누리는 것이다.
장기전세라면 여기에 시세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혜택까지 더해진다.
세입자가 보증금의 기회비용을 부담했다면, 그 대가로 거주권을 제공받았다는 사실도 함께 계산해야 공정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집값이 올랐으니 그 상승분에 대해서도 특별한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논리대로라면 일반 전세 세입자들도 퇴거할 때마다 집주인에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10년 전 보증금 3억 원을 맡겼는데 지금은 같은 돈으로 비슷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면, 집주인은 그 차액까지 보전해 줘야 하는가?
물론 이번 입주민들이 실제로 보증금 차액을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요구의 핵심은 분양전환 기회다.
그러나 주택가격 상승 때문에 보증금의 구매력이 줄었다는 사실과, 기존 계약에 없던 분양전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여전히 설명해야 할 간격이 있다.
가난해서 못 모은 것인가, 모으면 안 되는 것인가
이번 호소문에서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자산 축적에 관한 설명이다.
입주민대표회는 소득과 자산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재계약이 제한되는 구조 때문에 거주 중 자산을 불려 집값 상승을 따라잡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장기전세주택은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일정한 소득과 자산 기준을 두는 것은 공공자원을 상대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혜택을 계속 누리기 위해 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 제도 설계상 검토할 문제다.
나는 실제로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잃을까 봐 4대보험이 적용되는 일자리를 피하려 한다는 사람을 알고 있다. 몸이 불편해서 일을 못 하는 경우가 아니라, 소득이 공식적으로 잡히면 수급 자격에 불리할까 봐 일자리 선택을 제한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실제 수급 자격은 소득·재산 등을 종합해 판단하는 것이지, 4대보험 가입 여부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당사자가 그런 판단을 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더 벌면 지원이 줄어들고, 지원이 줄어드는 것이 두려워 더 벌 기회를 포기한다.
복지가 자립의 발판이 아니라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게임이 되는 순간이다.
장기전세 입주민들이 모두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이번 호소문도 의도적으로 저축이나 경제활동을 회피했다고 직접 밝힌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제기한 문제를 끝까지 밀고 가면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자산을 모으면 자격을 잃을 수 있는 제도가 문제라면, 해결책은 자산을 더 모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인가?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해결책이다.
자립을 방해하는 기준이 있다면 고칠 수 있다. 소득과 자산이 조금 늘었다고 갑자기 모든 지원을 중단하는 방식이 불합리하다면 점진적인 지원 축소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제도적 결함이 있었다는 주장만으로 특정 주택에 대한 분양전환 권리까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주거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주장과, 그러니 지금 사는 집을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는 구분해야 한다.
다른 동은 집주인이 됐다는 불공평
입주민들의 심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다른 동과의 비교다.
같이 입주했는데 누구는 수억 원의 자산을 가진 집주인이 되고 누구는 여전히 전세 세입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만약 반대로 집값이 크게 폭락했다면 어땠을까?
분양전환을 받은 사람들은 주택가격 하락의 위험을 부담했을 것이다. 반면 장기전세 입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소유주와 같은 자산 손실을 입지는 않는다.
주택을 소유하는 사람은 자산가격의 상승 가능성과 하락 위험을 함께 떠안는다.
세입자는 주거비 상승과 보증금 반환 등 다른 종류의 위험을 부담하지만, 그 집의 시세 변동이 곧바로 자신의 자산 손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값이 오르자 소유하지 않았던 자산의 상승분을 비교하며 부당함을 호소한다면, 집값이 떨어졌을 때도 소유자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이야기여야 논리적으로 대칭적이다.
물론 입주민들이 집을 공짜로 달라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분양받을 기회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
어떤 가격으로 분양할 것인가? 누가 우선권을 얻는가? 그 우선권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기존 계약에 없던 권리를 부여한다면 다른 무주택자와의 형평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분양전환 가격이 적절하다면 별도의 논의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것인지의 문제이지, 원래부터 존재했던 권리를 뒤늦게 돌려받는 문제와는 다르다.
공공주택은 먼저 들어간 사람의 영구 좌석인가
공공임대주택에는 입주민 말고도 이해관계자가 있다.
바로 아직 입주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강남의 장기전세주택에 살 기회를 얻지 못한 무주택자들,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공공주택 입주를 기다리는 가구들, 비슷한 소득과 자산 조건을 갖췄지만 추첨과 순위에서 밀린 사람들이다.
공공주택은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다. 기존 입주민에게 예정보다 긴 거주기간을 제공하거나 우선적인 분양 기회를 부여한다면, 그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주거는 단순한 경제상품이 아니다.
10년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학교에 다녔을 것이고, 이웃과의 관계도 형성됐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이주하기 어려워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정은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그래서 고령자나 취약계층을 위한 이주 지원, 현실적인 소득·자산 기준 조정, 새로운 공공주택으로의 연계 같은 대책은 논의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특정 공공주택의 소유권을 취득할 특별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공공주택의 정책 목적은 입주민에게 평생 같은 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데 있다.
그 목적을 위해 정한 거주기간과 공급 조건이 있다면, 이를 바꿀 때에는 현재 입주민뿐 아니라 앞으로 입주할 사람들의 권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현재의 370세대만이 이 주택정책의 이해당사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이번 호소문은 장기전세를 혜택이 아닌 정책 실패의 피해라고 규정한다.
물론 서울 집값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상승했고, 정부가 제공한 주거 안정만으로 내 집 마련까지 해결할 수 없었던 현실은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집 마련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결과만으로 그동안 제공받은 주거 지원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세보다 저렴한 보증금, 장기간의 거주 안정, 잦은 이사와 전세금 인상에 대한 부담 완화.
그것들은 분명한 경제적 혜택이었다.
그 혜택을 누린 사람이 시간이 흐른 뒤 집값 상승의 혜택까지 누린 다른 사람과 비교해 아쉬움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아쉬움과 피해는 다르다. 불만과 권리도 다르다.
그리고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5년 입주한 강남자곡힐스테이트 505동의 20년 임대의무기간 종료 시점은 대략 2035년이다. 2026년 현재 약 11년이 지난 시점에서 분양전환 요구가 제기된 것이다.
다만 LH는 임대의무기간 종료 이후의 임대운영 여부 등을 당시 정책 상황과 사업 여건을 종합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2035년에 모든 세대의 퇴거가 확정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후 운영 방침이 미정이라는 사실과 현재 입주민에게 우선 분양전환 권리가 이미 존재한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입주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제안하고 협상을 요청할 자유가 있다. 정책이 영원히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다.
다만 정책을 바꿔야 한다면 그것이 왜 공익에 부합하는지, 다른 무주택자에게도 공정한지, 공공자산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분할 것인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단지 집값이 많이 올랐고, 옆집 사람들이 집주인이 됐으며, 자신들은 여전히 세입자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 집에서 자란 아이들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들도, 그곳에 쌓인 추억도 모두 소중하다.
하지만 추억이 소유권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20년간 거주할 기회와 20년 뒤에도 그 집을 소유할 기회는 처음부터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아직 자신의 20년을 시작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다.
참고자료
아시아투데이, 「장기전세도 분양전환 해달라…강남자곡힐스테이트 임차인 호소에 비판 여론」 (2026.10.13.)
헤럴드경제, 「옆 동 집주인과 자산 격차 ‘10억’…LH장기전세 “분양해달라”」 (2026.10.13.)
이 글은 공개된 입주민대표회 호소문과 장기전세주택 제도를 바탕으로 작성한 비평 칼럼이다. 실제 개별 세대의 자산 형성 과정이나 재계약 상황을 조사한 결과는 아니며, 분양전환 요구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은 필자의 의견이다.
이미지: 일간 블로그쇼 · OpenAI 이미지 생성 도구로 제작한 개념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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