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간대구
일간 블로그쇼 홈으로
일간 블로그쇼 · 특별 연구실궁금증 과잉해소센터별것 아닌 궁금증을 필요 이상으로 해결합니다. 글 목록 보기

〈크리스마스 악몽〉은 팀 버튼 영화인데, 감독은 왜 헨리 셀릭일까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 깃펜과 뷰파인더, 지휘봉과 마이크로 창작 역할을 나눈 종이 극장 일러스트

영화 제목 앞에는 팀 버튼이 크게 앉아 있는데, 감독 칸을 열면 헨리 셀릭이 나온다. 공연 포스터를 보고 지휘자를 맞혔더니 프로그램에서 다른 사람이 지휘봉을 들고 있는 기분이다. 이름표가 뒤바뀐 걸까. 아니다. 우리가 큰 글씨를 보고 작은 담당 칸까지 한꺼번에 읽어버린 것이다.

〈크리스마스 악몽〉의 영문 공식 제목은 Tim Burton’s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그런데 같은 디즈니 공식 페이지의 ‘Directed By’에는 헨리 셀릭이 적혀 있다. 팀 버튼의 영화라는 말과 헨리 셀릭이 감독이라는 말은 같이 참이다. 다만 앞의 말은 참여를 넓게 부르고, 뒤의 말은 맡은 일을 정확히 부른다.

팀 버튼의 이름은 이야기와 캐릭터에서 온다

버튼은 이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었고 제작자로 참여했다. 제목 앞의 이름이 영화와 무관한 장식은 아니다. 디즈니의 D23도 이야기·캐릭터의 창작자를 버튼으로, 감독을 셀릭으로 따로 적는다. 포스터에 이름이 크다고 지휘봉까지 자동 지급되는 건 아니지만, 지휘봉이 없다고 그 이름을 지울 일도 없다.

여기서 ‘만들었다’라는 말이 은근히 사고를 친다. 이야기의 출발점을 만든 것, 각본을 쓴 것, 완성된 영화를 연출한 것을 모두 같은 동사에 넣을 수 있어서다. 냄비 하나에 직함을 몽땅 넣으면 편하긴 하다. 대신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국물 속으로 들어간다.

미국영화연구소 AFI의 세부 크레딧은 이 냄비를 다시 나눠준다. 버튼은 이야기, 마이클 맥도웰은 각색, 캐롤라인 톰슨은 각본으로 구분돼 있다. 디즈니의 작품 페이지는 이들을 ‘Written By’ 아래 함께 보여준다. 명단이 충돌하는 게 아니라, 어느 페이지는 큰 서랍을 보여주고 어느 페이지는 안쪽 칸막이까지 보여주는 셈이다.

출처: 디즈니 공식 작품 정보, D23 팀 버튼 항목, AFI 작품 크레딧

헨리 셀릭은 그 세계를 영화로 연출한 감독이다

그럼 왜 셀릭이 지휘봉을 들었을까. AFI의 제작 기록은 당시 자료를 종합해, 버튼의 일정이 겹치면서 그가 제작을 맡고 셀릭에게 연출을 맡겼다고 설명한다. 셀릭은 디즈니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였으며 스톱모션 연출 경험이 있었다는 설명도 붙는다. 이름만 빌려준 임시 담당자로 읽을 이유는 없다.

이 영화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인형을 조금씩 움직여 촬영하고, 그 이미지들을 이어 움직임을 만드는 방식이다. 종이에 존재하는 캐릭터와 화면에서 움직이는 캐릭터 사이에는 일이 잔뜩 들어간다. 어떤 장면으로 보여줄지, 움직임을 어떻게 이어갈지. 이야기의 주인이 있다는 사실이 이 연출의 자리를 비워주지는 않는다.

공연으로 치면 작곡가 이름이 포스터에 있고 지휘자는 프로그램에 따로 있는 상황을 떠올리면 쉽다. 물론 영화 제작을 음악회와 똑같이 나눌 수는 없다. 이 비유가 하는 일은 딱 하나다. ‘누구의 작품인가’를 묻는 칸과 ‘누가 감독했나’를 묻는 칸을 붙여놓지 않는 것. 한국영상자료원의 소장 자료도 제목에는 팀 버튼을, 감독에는 헨리 셀릭을 적는다.

출처: AFI 제작 기록,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정보, D23 제작진의 스톱모션 회고

잭의 노래까지 들으면 담당 칸이 하나 더 열린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여기서 덮으면 귀가 섭섭하다. 대니 엘프만은 이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맡았고, 잭 스켈링톤의 노래 목소리도 제공했다. 영어 원작에서 잭이 말할 때의 목소리는 크리스 서랜든, 노래할 때는 엘프만이다. 해골 하나에게 담당자가 둘이다. 잭은 몸집보다 크레딧이 넉넉하다.

한 캐릭터가 말하다 노래하기 시작해도 우리는 같은 잭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일이 하나로 합쳐진 것은 아니다. 제목 앞 이름과 감독 이름도 그와 비슷하게 읽으면 된다. 영화는 하나인데, 그 안에서 하는 일은 여럿이다.

다음에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라는 표현을 만나면 ‘감독’ 한 칸만 고치면 된다. 이야기·캐릭터와 제작은 버튼, 연출은 셀릭. 거기서 한 칸 더 열면 엘프만의 음악과 목소리도 나온다. 포스터를 찢을 필요는 없다. 프로그램을 펼치면 된다.

출처: D23 작품 항목, AFI 음성·음악 크레딧

일간 블로그쇼 필자 베토벤 프로필
글: 베토벤 · 일간 블로그쇼음악·문화 담당기자

노래 한 곡에서도 소리만 듣지 않는다. 그 뒤에서 시대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듣는다.

필자의 다른 글 보기 →

일간 블로그쇼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일간 블로그쇼 · 특별 연구실궁금증
과잉해소센터
별것 아닌 궁금증을
필요 이상으로 해결합니다.
글 목록 보기 →
신문과 라디오를 든 소년을 그린 복고 신문 만화풍 RSS 구독 배너

많이 읽는 글

좋은 이야기가
좋은 하루를 만듭니다.

일간 블로그쇼
DAILYBLOGSHOW.BLOG

카테고리 바로가기

생활·건강·음식
생활 · 생활안전 · 건강 · 음식

돈·일
돈 · 직장·일

사회·역사
사회·정책 · 역사·문명

과학·IT
과학·자연 · IT·기기

자동차
자동차

여행·지역
여행 · 지역

문화·스포츠
영화·문화 · 스포츠

칼럼·리뷰
칼럼 · 리뷰

지난 호

일간 블로그쇼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