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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다 친구가 만만한 사람들: 지인 간 돈거래의 불편한 진실

두 빈 의자가 놓인 집 식탁 한가운데 은행 창구 유리막이 세워진 목탄·과슈 삽화

이 글은 운영자가 제공한 실제 경험과 원고를 바탕으로 정리한 칼럼입니다.

은행에서 빌릴 수 있다면 왜 나에게 오는가. 은행에서 빌릴 수 없다면 나는 왜 빌려줘야 하는가.

돈을 받으러 갔다가 받을 생각을 접었다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

처음부터 돌려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빌려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전에도 돈거래가 있었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상환 날짜를 딱히 정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가져다 쓰라는 뜻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고 있을 만한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돈이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록 갚지 않더니, 오히려 돈을 더 빌려달라고 했다.

먼저 빌린 돈도 갚지 못한 사람이 추가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상황. 은행에서라면 기존 대출의 상환 상태부터 살펴볼 일이겠지만, 개인 간의 거래에는 그런 심사 절차조차 없다.

결국 돈을 받으러 직접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사정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돈을 안 갚는 것이 아니라, 갚을 만한 형편 자체가 아니었다. 생활이 궁핍했고, 경제적으로 재기할 여력이 얼마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돈을 달라고 다그칠 마음조차 사라졌다.

아, 이 돈은 못 받겠구나.

그 사람이 왜 나에게 돈을 더 빌려달라고 했는지도 짐작이 갔다. 이제는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릴 여력마저 바닥난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돈을 빌려준 건 나다. 갚기로 한 사람은 상대방이다. 그런데 돈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돈을 받을 생각을 접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지인 간의 돈거래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돈 빌려주는 게 직업인 은행을 놔두고 왜 나한테 올까?

누군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질문이 있다.

은행에서 빌리면 되는데 왜 하필 나한테 왔을까?

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정확히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내는 금융기관이다.

대출 심사에 필요한 신용정보도 있고, 소득과 부채를 확인할 방법도 있으며, 돈을 갚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절차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은행을 놔두고 친구를 찾아온다.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다.

은행에서 돈을 못 빌리거나,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데도 굳이 나에게 빌리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 한번쯤 따져봐야 할 문제다.

첫째, 은행에서도 돈을 못 빌리는 사람

물론 은행의 대출 심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소득이 불규칙한 자영업자나 일용직 노동자는 실제 상환능력이 있어도 대출 심사에서 불리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신용이 나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은행이 거절했다고 해서 반드시 돈을 못 갚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나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갚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미 빚이 너무 많을 수도 있고, 소득이 부족할 수도 있으며, 기존 채무를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금융기관조차 선뜻 돈을 빌려주기 어려운 상대라면, 내가 그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근거는 무엇일까?

친구라는 이유로?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사람이 착하다는 이유로?

좋은 사람이라고 빚을 잘 갚는 것은 아니다. 상환능력은 인격과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은행에서 빌리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악화된 사람이라면, 나 말고도 이미 돈을 빌린 곳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이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설령 돈을 갚을 능력이 생기더라도, 그 돈이 과연 나에게 먼저 돌아올까?

은행 대출이 연체되면 신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법적인 회수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다른 채권자 중에는 거칠게 독촉하거나 강경하게 대응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반면 나는?

친구니까 기다려줄 것 같고,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 이해해 줄 것 같고, 심하게 독촉하지도 못할 것 같다.

채무자가 부족한 돈으로 누구에게 먼저 갚을지 선택해야 한다면, 불이익이 크고 압박이 강한 곳부터 해결하려 할 유인이 생긴다.

물론 모든 채무자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변제 우선순위와 실제로 누구에게 먼저 송금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도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가능성은 있다.

가장 너그럽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가장 늦게 돈을 돌려받는 것.

채권자의 배려가 오히려 채무자의 상환 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데도 나에게 오는 사람

이쪽은 다른 의미에서 의문스럽다.

은행에 가면 돈을 빌릴 수 있다. 갚을 능력도 있고 신용에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왜 친구에게 빌리려 할까?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은행의 절차가 번거롭거나, 시간이 걸리거나, 소액이라서 굳이 대출받기 싫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이유는 결국 비용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한다.

친구에게 빌리면 이자가 없거나 적다.

은행에서 빌리면 상환일을 지켜야 한다.

친구에게 빌리면 사정을 봐줄 것 같다.

은행에서는 연체가 문제가 되지만, 친구에게는 며칠 늦어도, 한 달 늦어도 말로 양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악의 경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더라도 금융기관보다 느슨하게 대응해 줄 사람으로 나를 생각했을 수 있다.

은행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융통성을 나에게는 기대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 융통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는 편리하다. 이자를 아낄 수도 있고, 정해진 상환 일정에 덜 얽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돈을 빌려주는 나는 무엇을 얻는가?

이자도 받지 않고, 위험은 내가 부담하고, 혹시라도 돈을 못 갚으면 인간관계까지 어색해질 수 있다.

상대방이 편해지는 만큼 내가 불편해지는 거래다.

물론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흔쾌히 돕는 일까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빌려주는 사람이 어떤 부담을 떠안는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택시비가 아까우면 친구 차를 타면 되나?

나는 이런 돈거래가 다른 일상의 부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택시를 타면 요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택시비가 아까우니 친구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한다.

렌터카를 빌리면 대여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렌트비가 아까우니 친구에게 차를 빌려달라고 한다.

택시는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고, 렌터카는 자동차를 빌려주는 사업이다.

그런데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친구의 호의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친구끼리 차를 태워주고 빌려주는 일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서로 필요할 때 기꺼이 도울 수 있다.

문제는 그 호의를 당연한 권리처럼 기대하는 순간이다.

택시를 타면 돈을 내야 하지만 친구 차를 타면 공짜일 것 같다.

렌터카를 이용하면 사고와 손상에 관한 책임을 따져야 하지만 친구 차라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하지만 친구에게 빌리면 굳이 안 줘도 될 것 같다.

모두 상대방의 호의를 이용하면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택시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친구가 운전기사가 되어줄 의무는 없다.

렌트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친구가 자기 차를 내어줄 의무도 없다.

마찬가지로 은행 이자가 아깝다는 이유로 내가 무이자 금융기관이 되어줄 의무는 없다.

친구가 먼저 호의를 베푸는 것과, 상대방이 그 호의를 계산에 넣고 찾아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사람이 절약하는 비용이 왜 내 부담이어야 하는가?

차용증을 쓰자고 하면 왜 우정이 등장할까?

친구 사이의 돈거래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 중 하나가 있다.

'친구끼리 무슨 차용증까지 쓰냐.'

이상한 논리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호의를 베푼 셈이다.

은행에 가면 이자를 내야 할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운 일 아닌가?

그런데 차용증까지 쓰지 말자고 한다면, 빌려주는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더 양보해야 하는 것일까?

돈을 빌릴 때 하는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반드시 갚겠다.

약속한 대로 갚겠다.

절대 떼어먹을 일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간단하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차용증을 쓰고, 연체할 경우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이자를 지급한다는 약정까지 한들 무슨 문제가 있을까?

정말 약속한 날에 갚으면 연체이자를 낼 일 자체가 없다.

연체할 일이 절대 없다고 장담한다면, 연체했을 때 책임지겠다는 약속도 그렇게 두려울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돈을 갚겠다는 말에는 자신 있으면서, 그 말을 문서로 남기는 데에는 유독 인색한 사람이 있다.

물론 친구 사이에 서류를 주고받는 일이 어색할 수는 있다. 문서 작성을 꺼린다고 해서 반드시 떼어먹을 생각이라는 증거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돈을 빌리는 사람이 그 어색함을 이유로 빌려주는 사람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거절한다면, 누구의 입장을 우선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친구 사이니까 믿어달라면서, 친구 사이니까 차용증도 쓰지 말자고 한다.

그러고는 갚을 때가 되면 사정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이쯤 되면 친구라는 관계가 어느 한쪽에만 지나치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닌가?

친구라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친구라서 이자를 안 받고, 친구라서 차용증을 쓰지 않고, 친구라서 상환을 독촉하기도 어렵다.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는 우정이 편의를 제공하지만,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는 우정이 권리 행사를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빌릴 때는 우정이 담보였는데, 갚을 때는 우정이 방패가 되는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

내가 돈을 받으러 찾아갔던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웠고, 당장 갚을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돈을 떼어먹을 생각이었는지는 모른다. 처음 빌릴 때만 해도 정말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돈을 빌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갚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추가로 돈을 빌리려 했다.

돈을 빌려준 내 입장에서 상대방의 사정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그 절박함이 내 돈을 되돌려주지는 않는다.

법적으로는 돈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

차용증이 없어도 대여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법적인 청구를 검토할 수 있고, 소송이나 강제집행 같은 절차도 존재한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집행할 재산이나 소득이 없다면 실제 회수는 별개의 문제다.

종이 위에 적힌 채권과 내 통장에 들어오는 현금은 다르다.

돈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받을 돈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그 돈을 실제로 받아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나는 돈을 빌려주던 순간 이미 상당한 위험을 떠안은 셈이었다. 다만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친구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너무 각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는데, 친구끼리 그 정도 도움도 못 주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나 역시 인간관계에서 모든 호의를 손익계산서에 올려놓고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을 돕는 일과 돈을 빌려주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상대방의 사정이 딱해서 돈을 주고 싶다면 그냥 줄 수 있다.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말이다.

하지만 빌려준 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빌린 돈에는 갚을 의무가 있다.

그 의무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친구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호의를 믿는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돈을 벌 수 있을지, 기존의 채무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 나에게 빌린 돈을 약속대로 돌려줄 수 있을지까지 보증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상환능력의 문제다.

나는 친구의 인격을 평가할 수는 있어도, 친구의 미래 소득을 보증할 수는 없다.

그리고 친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해서 그 위험을 대신 떠안을 의무도 없다.

나는 은행보다 돈을 잘 받아낼 자신이 없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이라면 왜 내가 빌려줘야 할까?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왜 굳이 나에게 빌리려 할까?

첫 번째 경우에는 상환능력을 의심해 봐야 한다.

두 번째 경우에는 나에게 어떤 비용과 위험을 떠넘기려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물론 어느 쪽에도 예외는 있다. 성실하게 갚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가까운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 순간도 있다.

그러나 그런 예외가 내게 돈을 빌려줄 의무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은행은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는다. 신용심사도 하고, 상환일도 정하고, 연체했을 때의 대응 절차도 마련해 놓는다.

나는 그중 어느 하나도 은행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

오히려 친구라는 이유로 이자를 포기하고, 계약을 생략하고, 상환을 기다려주다가, 마지막에는 돈을 돌려받을 생각까지 접게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다.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돈을 빌려준 결과는 분명하다.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사람에게는 내가 은행보다 무엇을 더 알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사람에게는 왜 은행 대신 나를 찾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마지막에는 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은행보다 못한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려 하는가?

친구를 믿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를 믿는 것과 친구에게 대출해 주는 것은 별개라는 이야기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일을 괜히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은행이 아니다.

그리고 은행보다 돈을 잘 받아낼 자신도 없다.

참고 출처

출처: 법제처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 차용증 작성하기

출처: 법제처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 대여금 청구

출처: 대법원 2025.9.18. 선고 2023다221885 전원합의체 판결: 중도상환수수료 판결 중 약정 연체이자 설명

일간 블로그쇼 필자 툰드라 프로필
글: 툰드라 · 일간 블로그쇼일간 블로그쇼 호스트

이것저것 궁금해하고, 굳이 찾아보고, 생활의 묘한 구석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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