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아주 빨리 넘기면 영화가 될까. 그렇다면 영화가 만화책 쪽으로 조금 되돌아갈 때는 무엇이 남을까. 스파이더버스의 툭툭 끊기는 움직임은 이 질문을 눈앞에 놓는다. 매끈함을 덜어냈는데 포즈는 오히려 눈에 들어온다. 움직이는 만화책이라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와 그림을 읽는 박자가 꼭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작품은 2018년작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원제 Into the Spider-Verse다. 제작사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의 설명을 따라가면, 덜 매끈한 인상은 사실성을 향해 가다가 멈춘 흔적이 아니다. 만화의 그림과 리듬을 화면으로 가져오려는 선택이다. 기술이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느냐와, 이 영화가 그렇게 보이고 싶으냐는 다른 질문이다.
24칸의 시간표, 포즈는 두 칸씩
우선 움직이는 만화책에 초당 24칸짜리 시간표를 그려보자. 매 칸마다 새 포즈를 넣으면 A-B-C-D다. 같은 포즈를 두 칸씩 유지하면 A-A-B-B가 된다. 제작사가 설명하는 ‘온 원스(on ones)’와 ‘온 투스(on twos)’의 차이다. 온 투스 방식으로 이어지는 1초라면 서로 다른 이미지는 12개다. 숫자가 절반이라고 시간이 절반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같은 포즈가 조금 더 머무는 것이다.
이때 붙잡아야 할 것은 재생 파일의 프레임 수보다 포즈의 교체 간격이다. ‘이 영화는 통째로 12fps다’라고 줄이면 시간표와 그 안의 그림을 한데 접어버린다. 제작사는 프레임의 박자를 조절하는 ‘프레임 모듈레이션’과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시뮬레이션을 함께 다뤘다고 설명한다. 완성 화면의 모든 요소가 두 칸 내내 똑같다는 뜻도 아니다.
잠깐 머무는 포즈에는 읽을 틈이 생긴다. 만화책에서 한 칸의 자세를 보고 다음 칸으로 넘어가듯이. 제작사가 노린 것도 각 프레임이 독립된 만화 패널처럼 보이는 또렷한 인상이었다. 다만 오래 붙든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팀이 원한 건 심하게 덜컥거리는 화면이 아니라, 힘 있게 튀면서도 명료한 움직임이었다. 만화 한 칸을 읽히게 하는 일과 페이지를 못 넘기게 하는 일은 다르다.
윤곽을 남기려면, 속도도 다른 말로
그림의 칸을 살렸다면 빠른 동작은 어떻게 건너갈까. 무작정 흐리게 연결하면 애써 붙잡은 윤곽이 약해진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모션 블러를 피하는 대신 형태를 늘이는 변형, 속도선, 여러 팔다리를 겹쳐 보이는 표현 등을 썼다. 빠른 움직임이 뚝뚝 끊겨 보이는 스트로빙 문제를 다른 시각 언어로 푼 것이다. 잔상이 맡을 설명을 만화의 선과 과장된 형태가 나눠 맡는다.
표면도 같은 만화책 편이다. 색을 부드럽게 이어 칠하는 대신 작은 점으로 농담을 만드는 하프톤과 선을 겹치는 해칭을 활용했다. 오래된 만화 인쇄에서 가져온 방식이다. 손으로 그린 요소와 새로운 렌더링 방식도 섞었다. 움직임만 툭툭 끊고 나머지는 사실적으로 칠한 것이 아니라, 포즈의 박자와 그림의 질감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폭발과 불 같은 효과에도 손그림 요소를 쓰고 3D 시뮬레이션과 결합했다. 그러니 ‘프레임을 덜 만들면 스파이더버스처럼 된다’는 계산은 너무 성급하다. 두 칸에 머무는 그림이 있다면, 그 주위의 카메라와 효과도 함께 맞춰야 한다. 만화책의 칸을 영화에 옮겼더니 일이 줄기는커녕 칸 밖에서 맞출 것이 생긴 셈이다.
다시 볼 때는 부드러운가 아닌가를 잠시 뒤로 미뤄도 좋겠다. 어느 자세가 눈에 남는지, 빠른 동작을 흐림 대신 무엇으로 읽게 하는지 보면 된다. 이건 모니터의 숫자를 높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고른 박자를 알아보는 일이다. 움직이는 만화책은 페이지를 빨리 넘기는 재주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어느 그림에서 잠깐 멈출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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