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1대0으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한국 남자축구의 아시안게임 4연패였다.
그런데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엉뚱한 데서 시끄러워졌다. 선수들의 입이었다.
주장 이기혁은 경기 뒤 방송 인터뷰에서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다. 양민혁은 메달이나 트로피보다 병역 혜택이라는 보상 하나를 보고 뛰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승수는 라커룸에서 전역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논란이 커지자 세 선수는 사과했다. 양민혁은 병역 혜택도 여러 동기 중 하나였다는 뜻이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다.
나는 선수들이 군대에 가기 싫어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별 감정이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20대 남자에게 군복무는 작은 일이 아니다. 하물며 몸으로 돈을 버는 프로 운동선수라면 더하다. 전성기는 짧고, 한창 경기에 뛰면서 몸값과 경력을 쌓아야 할 때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라면 1년 반의 경력 단절은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는 것은 완전한 ‘군 면제’가 아니라 체육요원 편입이다. 현재 병무청 기준으로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가 대상이 된다. 해당 분야에서 34개월 복무하고 544시간의 공익복무도 해야 한다.
어쨌든 선수 입장에서는 엄청난 혜택이다.
선수촌 숙소에서 문 닫아놓고 자기들끼리 “야, 우리 이제 군대 안 간다” 하고 날뛰었다고 해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 같다. 친구들끼리 사석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걸 태극마크를 달고 언론 앞에서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는 것은 발언의 면허증이 아니다
요즘은 솔직함을 거의 무조건적인 미덕처럼 취급할 때가 있다.
“틀린 말 했냐?” “실제로 군면제 때문에 열심히 뛴 거잖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이라는 것은 발언의 면허증이 아니다.
친구 결혼식에 갔는데 사실 신랑보다 뷔페가 더 기대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회사 송별회에서 저 사람이 나가는 것보다 빈자리에 누가 들어올지가 더 궁금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장례식장에서 상속 문제를 생각할 수도 있다.
전부 사실일 수 있다. 그렇다고 굳이 마이크를 잡고 말하지 않는다.
거짓말쟁이라서가 아니다. 장소와 관계와 자기 위치에 따라 입 밖으로 내놓을 말과 그냥 머릿속에 둘 말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그게 사회생활이다.
더구나 국가대표는 기자 앞에서 개인 한 사람의 자격으로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태극마크라는 상징을 달고 국가대표 선수의 자격으로 말한다.
그렇다고 “저는 오직 조국의 영광만을 위해 뛰었습니다” 같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가령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병역 문제도 개인적으로 큰 동기였다. 하지만 대표팀 선수로서 반드시 우승하고 싶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진실을 전부 말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하는 것은 다르다.
이번 일에서 가장 아쉬운 것도 그 구별이다. 뒤늦은 해명을 감안해도, 처음 마이크 앞에서 골랐던 말의 경솔함은 남는다.
병역혜택을 바라면서도 국민들은 왜 불편할까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한국 사람들이 선수들의 병역특례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기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경기가 시작되면 정반대의 이야기도 나온다.
“쟤 이번에 못 따면 군대 간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제발 금메달 따서 군대 문제 해결하자.”
이런 이야기를 팬들이 더 열심히 한다. 선수의 병역 문제가 해결되기를 선수보다 더 간절하게 바라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다 막상 선수가 “군대 안 갑니다”라고 신나서 말하면 갑자기 화를 낸다. 참 묘하다.
병역특례 앞에서 국민은 의외로 츤데레다
이걸 아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2023년에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롤러스케이트 남자 3,000m 계주였다.
한국은 정철원, 최인호, 최광호 세 선수가 뛰었다. 마지막 주자 정철원은 금메달을 확신하고 결승선을 통과하기도 전에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뒤에서 따라오던 대만 선수가 끝까지 발을 내밀었다.
결과는 0.01초 차 역전. 한국은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을 땄다.
당연히 욕을 먹었다. 국가대표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기도 전에 세리머니를 하다 금메달을 놓쳤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비판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정철원 본인뿐 아니라 같은 팀 최인호까지 그 경기에서 병역특례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최광호는 이미 병역 문제가 해결된 상태여서 해당되지 않았다.
그러니 “동료를 군대로 보냈다”는 표현은 과장이다. 그 경기에서 기회를 놓쳤다는 것과 누군가의 입대가 확정됐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하지만 당시 여론에서는 메달 색깔과 함께 동료의 병역특례 기회를 놓쳤다는 점도 크게 거론됐다.
여기서 묘한 모순이 생긴다. 선수가 공개적으로 군면제를 좋아하면 꼴 보기 싫다. 그런데 그 선수가 군면제를 못 받게 생기면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나는 이게 완전히 위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국민들도 군복무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선수가 그 부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다만 그 혜택을 받은 선수가 국가대표라는 자리에서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내거나, 그 보상 하나만 보고 뛰었다는 식으로 말하면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꽤 츤데레다. “그래, 너는 안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좋아하는 티는 좀 적당히 내라.”
한국인의 병역특례에 대한 감정은 의외로 이 문장과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군면제가 정말 경기력을 올리기는 할까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질문이 생긴다. 남자축구 아시안게임 이야기를 할 때마다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군면제가 걸려 있으니까 죽기 살기로 뛰는 거지.”
그럴듯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다.
그러면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은 뭘 보고 뛰나.
여자 선수들에게는 남자 선수와 같은 병역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여자 국가대표가 국제대회를 설렁설렁 뛰는 것도 아니다. 몸을 던지고, 부상을 감수하고, 대표팀에 들기 위해 경쟁하고, 메달 하나를 위해 몇 년씩 훈련한다.
그렇다면 사고실험을 한번 해볼 수 있다.
여자 축구대표팀에게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 남자 선수의 병역 혜택에 버금가는 엄청난 개인적 보상을 준다고 해보자. 갑자기 경기력이 크게 올라갈까.
나는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상금이 아무리 커도 없는 체력을 새로 만들지는 못한다. 패스 정확도가 갑자기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을 놓고 경쟁하는 운동선수에게 ‘조금 덜 노력하고 있다가 중요한 대회에서 더 노력할’ 여유가 얼마나 있겠나 싶다.
대표팀에 뽑히는 것부터 이미 다른 선수들을 밀어내야 한다. 프로에서는 매 경기 자기 자리가 걸려 있다. 연봉과 이적과 선수생명이 달려 있다.
그 정도 경쟁에서 평소에는 90%만 노력하다가 “군면제 걸렸다”는 말을 듣고 100%가 된다는 설명은 오히려 이상하다. 90%만 하던 선수가 애초에 그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물론 병역특례가 개인에게 엄청난 추가 동기가 될 수는 있다. 이 사고실험이 보상의 효과가 없다는 증거도 아니다.
다만 추가적인 동기와 실제 경기력 향상은 같은 말이 아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무엇 때문에 뛰나
한국 밖으로 눈을 돌리면 질문은 더 선명해진다.
한국처럼 국제대회 성적과 병역 혜택을 직접 연결하는 제도가 세계의 보편적인 방식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선수들이 국제대회를 덜 절실하게 뛰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남성 징병제가 있는 나라조차 엘리트 선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싱가포르는 세계 정상급 선수에게 국제대회 준비를 위한 장기 입대 연기를 매우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카이트포일 선수 막시밀리안 메더는 2028 LA올림픽 준비를 위해 복무를 연기했지만, 연기 기간이 끝나면 입대해야 한다. 싱가포르 국방부는 정상급 선수의 커리어를 고려해 연기는 허용할 수 있어도, 스포츠 성취로 병역의무 자체를 대신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는다.
이스라엘도 우수 운동선수가 군복무 중 훈련과 경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별도의 지위를 운영한다.
즉 엘리트 선수의 전성기를 보호하는 방법이 반드시 ‘금메달을 따면 병역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식 제도가 없는 나라 선수들이 한국 선수보다 덜 열심히 뛴다고 보기도 어렵다.
군대에 안 가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을 초인으로 만드는가
일반인의 경우를 생각해봐도 묘하다. 군대에 가고 싶어 하는 남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모든 남자가 자기 인생의 상당 부분을 병역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을 찾는 데 쏟아붓는 것도 아니다.
불법적인 병역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허용된 입대 경로나 복무 방식 가운데 조금 더 유리한 방법을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조차 모든 사람이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처럼 매달리지는 않는다. 상당수는 결국 때가 되면 군복무를 한다.
병역 부담을 피하려는 욕망이 인간을 초인적으로 노력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동기라면 이것부터 조금 이상하다.
평범한 사람이 병역 부담을 조금 줄이는 것보다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는 것은 비교할 수도 없이 어렵다. 그런데 금메달이라는 세계 최정상급 성취에 대해서만 갑자기 군대에 안 가고 싶으니까 평소보다 훨씬 잘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그 설명이 인간의 동기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같다.
군면제는 엄청난 보상이다. 그건 분명하다.
그러나 엄청난 보상이라는 것과 그 보상이 경기력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어쩌면 군면제는 금메달을 따게 만드는 연료라기보다, 이미 금메달을 따낼 정도로 달려온 남자 선수에게 붙는 엄청나게 큰 개인적 전리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군면제 하나만 보고 뛰었다는 말. 그 말은 선수 개인의 심정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왜 우승했는지를 설명하는 문장까지는 아니다.
병역의무의 남녀 차이라는 출발점
병역특례를 둘러싼 논쟁은 늘 복잡하다. 왜 올림픽은 되고 다른 대회는 안 되는가. 왜 체육은 되고 다른 분야는 안 되는가. 아시안게임 금메달 하나가 정말 병역을 대체할 만큼의 공적인가.
그런데 이 모든 문제 아래에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잘 말하지 않는 사실 하나가 깔려 있다.
현재 병역법상 대한민국 남성에게 병역의무가 부과되고, 여성은 지원에 의해 현역과 예비역으로 복무한다.
남자에게 병역의무가 있기 때문에 남자 선수에게만 ‘병역 혜택’이라는 엄청난 상품이 생긴다. 여자 선수는 같은 금메달을 따도 군면제를 받지 않는다. 면제받을 병역의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국가대표, 같은 금메달인데도 남자 선수의 메달에는 선수경력과 상금과 명예 외에 인생을 크게 바꿀 별도의 가격표가 붙는다.
이번 선수들의 언행은 그 가격표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편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전혀 다른 궁금증 하나가 생겼다.
우리는 군복무가 한 남자의 인생에서 무엇을 가져가는지는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수십만 명의 젊은 남자에게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제도라면 이야기가 정말 개인 한 명에서 끝나는 걸까.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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