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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우리의 속마음 ②|모든 남자가 군대에 안 가는 세상

열린 문 바깥의 군화와 안쪽의 운동화를 그린 상징 삽화

군대가 없어지면 좋은 점은 굳이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 육군 현역병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20대의 18개월을 돌려받는다. 학교를 쉬지 않아도 된다. 취업이 늦어지지 않는다. 여행도 가고 돈도 벌고 공부도 이어갈 수 있다. 군입대로 잘 만나던 여자친구와 멀어지고 결국 헤어지는 일도 피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입 아프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쪽을 한번 보려고 한다.

안보 불안까지 사라져 더 이상 징병제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왔다고 해보자. 이 글에서 군대가 없어진다는 말은,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입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좋은 점은 뻔하니 그것 말고, 남자 개인에게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선택권을 준다면 아마 대부분의 남자는 그래도 군대에 가지 않는 쪽을 고를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좋은 점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과, 반대편에 아무 변화도 없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남학생 하나가 군대에 안 갔다

대학교 1학년 남학생 한 명을 생각해보자. 원래라면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간다. 자취방을 뺀다. 하던 편의점 알바도 그만둔다. 동아리에서도 한동안 사라진다. 학교 앞 식당에서 밥 먹던 손님 한 명이 없어지고 도서관 자리 하나도 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여자친구와도 헤어진다.

그러다 18개월 뒤 돌아온다. 한국에서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 군대가 없어졌다. 이 학생은 그냥 2학년이 된다. 방도 그대로 쓴다. 알바도 계속한다. 학교에도 계속 나온다. 연애도 군복무라는 이유로 끊길 필요가 없다.

별일 아니다. 남학생 한 명일 때는.

그런데 학교 남학생 수백 명, 수천 명이 전부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제일 먼저 원룸촌에서 뭔가 이상해진다

대학교 앞 원룸촌을 생각해보자. 매년 군입대를 앞두고 방을 빼던 남학생들이 더 이상 방을 빼지 않는다. 복학철에 돌아오던 학생들도 애초에 떠난 적이 없다.

대학 정원도, 주변의 다른 조건도 그대로라고 해보자. 도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학교 주변에 실제로 거주하는 남학생은 이전보다 많아진다.

원룸 숫자가 그대로라면? 방을 구하려는 사람은 늘어날 수 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월세와 보증금에도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다.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군대가 없어졌는데 뜬금없이 방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번에는 편의점 문에 붙은 알바 모집 공고를 보자. 가게 수와 모집하는 자리도 그대로라고 해보자.

원래라면 지금 군부대에 있을 남학생들이 학교 주변에 그대로 있다. 생활비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 지원한다. 카페에도 지원한다. PC방에도 간다. 과외도 구한다.

좋은 시간대의 괜찮은 알바 한 자리를 원하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다. 군대가 없어졌는데 알바 구하기는 오히려 조금 어려워질 수도 있다.

여기쯤 오면 뭔가 이상하다.

나는 18개월을 돌려받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만 돌려받은 게 아니었다.

군대는 내 시간만 가져간 것이 아니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나는 민간사회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남자들도 차례대로 군대에 간다. 내가 제대해서 학교에 돌아오면 누군가는 입대한다. 내가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 누군가는 훈련소에 있다. 내가 학교 앞에서 방을 구하면 누군가는 방을 빼고 군대로 간다. 내가 알바를 찾으면 누군가는 그 알바를 그만두고 입대한다.

그제야 보이는 것이 있다.

군대는 내 시간만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내 경쟁자들의 시간도 같이 빼앗고 있었다.

징병제가 없어진다는 것은 내가 18개월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모든 남자도 자기 18개월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더 이상 군부대 안에 있지 않는다. 나와 같은 학교에 있고, 같은 동네에 있고, 같은 취업시장을 돌아다니고, 같은 사회에서 움직인다.

군복무 시간을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보자

정확한 현실 계산이 아니라 구조를 보기 위한 사고실험이다.

20대를 10년이라고 하자. 그리고 그 가운데 18개월을 군대에서 보낸다고 극단적으로 단순화해보자. 10년 가운데 1년 반이니 15%다.

모든 남자가 20대에 18개월씩 복무하고, 세대별 인원도 같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남자 100명 중 장기간 평균으로 약 15명이 군에 있고 85명 정도가 민간사회에 있는 그림이 된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깔끔하지 않다. 입대 나이도 다르고 복무형태도 다르고 면제되는 사람도 있다. 군복무 중에도 휴가를 나오고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한다. 그러니 실제 대한민국 청년 남성의 민간활동 비율이 85%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조만 보자는 것이다.

그 구조에서 군대가 사라지면 85명이 100명이 된다.

전체 100명 가운데 15명이 늘어났다고 보면 15%지만, 원래 사회에 있던 85명 입장에서는 활동 가능한 남성 풀이 약 17.6% 커진다.

그렇다고 취업 경쟁률이 17.6% 오른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틀린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징병제는 한 시점의 민간사회에서 활동하는 젊은 남성 수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 그 구조가 사라지면 그 사람들이 사회에 남는다.

원룸과 알바는 시작에 불과하다

대학을 졸업하면 이 효과가 사라질까. 오히려 범위가 커진다.

군대에 가지 않으면 졸업도 빨라질 수 있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 첫 직장에 들어가는 시기도 빨라질 수 있다. 자격증을 딸 준비도 먼저 시작할 수 있다. 공무원 시험도 먼저 볼 수 있다. 창업도 먼저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지금보다 18개월 빨리 돈을 벌기 시작한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또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같은 또래 남자들도 전부 18개월을 돌려받았다.

지금은 대학생 일부가 군복무 때문에 순차적으로 학교에서 빠지고, 졸업 시기가 갈리고,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시기도 흩어진다. 그 이유 하나가 사라진다.

그러면 어떤 시점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동년배 남성이 같은 취업시장 안에 있을 수 있다. 대기업에도 지원한다. 중소기업에도 지원한다. 공기업 시험을 본다. 공무원 시험을 본다. 각종 자격시험을 본다.

한정된 좋은 일자리 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인원이 달라질 수 있다.

징병제 폐지는 단순히 한 남자의 인생에서 18개월짜리 공백 하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한 세대의 사회 진입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연애시장도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사람의 연애를 취업 경쟁률처럼 계산할 수는 없다. 군인도 연애한다. 휴가도 나오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소개도 받는다.

그래도 군부대 안에 있는 남성과 민간사회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남성의 활동 조건이 같다고 하기는 어렵다.

군대가 없다면 원래 군부대에 있었을 남자가 학교에 있다. 직장에 있다. 술집에 있다. 동호회에 있다. 여행을 다닌다. 소개팅도 한다.

여성 입장에서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 남성의 풀이 넓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젊은 남성 입장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다른 남성 역시 늘어날 수 있다. 그중에는 나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시선을 나라 전체로 바꾸면 완전히 반대가 된다

개인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줄어드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그런데 나라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정반대다. 내 경쟁자가 군대에 가서 사라졌다는 것은 그만큼의 젊은 인력이 민간사회에서 빠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사람은 내 취업 경쟁자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다. 기술자가 될 수도 있다. 연구원이 될 수도 있다. 가게를 열 수도 있다. 회사를 만들 수도 있다. 돈을 벌어 세금을 내고 다른 사람이 만든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경쟁자가 적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내게는 조금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사람을 쓰는 관점에서 보면 가장 팔팔한 나이의 인력 상당수를 18개월 동안 민간사회에서 쓰지 못하는 셈이다.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것은 감수해야 할 비용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의 가정처럼 안보 불안 자체가 사라져 더 이상 징병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그 인력이 군에 묶여 있을 이유도 사라진다.

그리고 여기서 묘한 역설이 완성된다. 내게 사라진 경쟁자는 나라에게도 사라진 인재다.

개인에게 돌아오는 다른 남자의 18개월은 경쟁이다. 나라에 돌아오는 다른 남자의 18개월은 인력이다.

물론 사람만 늘고 세상은 그대로 멈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소비가 늘고 가게가 생기고 새 일자리도 생길 수 있다. 원룸도 더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앞의 장면들은 다른 조건을 잠깐 고정해본 이야기다. 나라 전체의 변화를 취업 경쟁률 하나로 계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군대가 좋은 제도라는 이야기인가

전혀 아니다.

바닷가에 배 한 척이 침몰했다고 해보자. 시간이 지나면 난파선에 해조류가 붙는다. 작은 생물이 자리를 잡는다. 물고기들이 숨어든다. 어느새 훌륭한 물고기 쉼터가 된다.

그렇다고 물고기 쉼터를 만들겠다며 멀쩡한 배를 일부러 침몰시킬 바보는 없다.

징병제가 젊은 남성 사이의 경쟁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도 이 난파선과 비슷하다.

그걸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다. 그리고 그 부산물이 군복무의 비용을 정당화할 정도로 크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남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물어보면 된다. “경쟁자가 조금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군대에 안 가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군대에 가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됐다. 그냥 내 18개월 돌려달라. 내 경쟁자 몇 명 줄어드는 것보다 내 인생 18개월을 내가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난파선 주변에 물고기가 모인다고 난파가 좋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대가 사라지면 돌아오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군대가 사라지면 남자들은 시간을 되찾는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길게 할 필요도 없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이다. 내가 되찾은 18개월은 다른 남자도 되찾는다. 그들은 학교에 남는다. 방을 구한다. 알바를 한다. 회사에 지원한다. 시험을 본다. 창업한다. 연애한다. 돈을 벌고 돈을 쓴다.

그래서 군대 없는 세상은 지금 세상에서 ‘군복무 18개월’만 지우개로 슥 지운 모습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남자 개인에게는 시간이 늘어나는 대신 경쟁자도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라 전체에는 그 경쟁자의 귀환 자체가 생산력의 귀환일 수 있다.

군복무의 손실을 개인 한 명의 시간으로만 계산하면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내가 18개월을 잃었다.”

맞다. 그런데 한 세대 전체에서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개인만의 손실이 아니다. 가장 젊고 팔팔한 시기의 수많은 사람이 학교와 일터와 시장에서 빠져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쌓을 수 있었던 경력과 기술, 만들 수 있었던 회사, 벌고 쓸 수 있었던 돈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군대가 사라지면 돌아오는 것은 18개월이라는 숫자만이 아니다. 그 시간을 돌려받은 사람들도 함께 돌아온다.

그리고 개인에게는 그들이 경쟁자일지 몰라도, 나라에는 그 사람들이 바로 인재다.

참고자료

  • 병무청: 현역병 입영신청 절차 및 복무기간. 육군 현역병 복무기간은 기본군사훈련을 포함해 18개월이다.
  • 본문의 85명·100명·약 17.6%는 모든 남자가 20대에 18개월 복무하고 세대별 인원이 같다는 가정에서 계산한 값이다. 실제 민간활동 비율이나 취업 경쟁률 예측치가 아니다.

먼저 읽기: 군대와 우리의 속마음 ①|사실이라고 다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일간 블로그쇼 필자 까마귀 프로필
글: 까마귀 · 일간 블로그쇼사회·논쟁 담당기자

남들이 답을 찾을 때 혼자 “근데 질문이 맞나?”부터 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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