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이름이 같으면 일단 같은 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병 아래에 붙은 오드퍼퓸과 오드뚜왈렛만 다르다면 더 그렇다. 원액은 같고, 한쪽에 물이나 알코올을 조금 더 부었겠지. 진한 컵과 묽은 컵. 그러면 오래 남는 쪽을 고르는 문제도 꽤 간단해진다.
나는 여기서 컵이 정말 같은 컵인지가 걸린다. 더 오래 간다는 말을 믿고 샀는데, 오래 남는 것이 내가 좋아하던 향과 다른 방향이면 조금 곤란하다. 오래 있다는 사실과 같이 있고 싶다는 사실은 별개다. 아직 향을 맡지도 않았는데 체류시간부터 계약하고 있다.
농도 차이 자체가 없는 건 아니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공식 안내는 알코올에 희석한 향료의 농도를 설명하며 오드퍼퓸을 오드뚜왈렛보다 높은 쪽에 놓는다. 다만 이 설명만으로 같은 이름의 두 제품이 동일한 향료 배합이라고 확인되지는 않는다. 컵에 얼마나 담았는지와 컵에 무엇을 담았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블루 드 샤넬 두 병, 설명부터 갈라진다
샤넬 미국 공식 사이트의 현행 블루 드 샤넬을 나란히 놓았다. 오드뚜왈렛은 시트러스의 산뜻함, 아로마틱 어코드, 시더우드 노트를 설명한다. 뉴칼레도니아산 샌들우드가 따뜻한 여운을 더한다는 소개도 있다. 오드퍼퓸 역시 아로마틱 우디 계열이지만 앰버와 머스크 노트를 앞세운다. 시더우드와 뉴칼레도니아산 샌들우드도 등장한다.
나무가 한쪽 병에만 사는 것은 아니다. 두 설명에 공통으로 있는 나무를 지우고 ‘EDT는 상큼, EDP는 나무’라고 나누면 이미 자료보다 깔끔해져 버린다. 공식 소개에서 확인되는 건 공통 축을 유지하면서도 강조하는 향의 면이 다르다는 정도다. 실제로 어느 쪽이 더 달고 부드럽게 느껴질지는 이 문장을 대신 읽어주는 코가 정할 수 없다.
제품 페이지의 공개 성분목록에도 차이가 있다. 오드퍼퓸 목록에는 바닐린이 적혀 있고, 확인한 오드뚜왈렛 목록에는 그 이름이 없다. 반대로 아세틸 시드렌은 오드뚜왈렛 목록에 있고 오드퍼퓸 목록에는 없다. 적어도 공개된 두 목록은 복사한 종이 두 장이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좀 참아야 한다. 바닐린이라는 글자를 찾았다고 향의 단맛을 숫자로 알아낸 것도, 비밀 배합표를 손에 넣은 것도 아니다. 두 목록 모두 ‘PARFUM’이라는 큰 묶음을 포함하고 정확한 배합비를 공개하지 않는다. 샤넬도 목록이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으니 실제 제품 포장을 확인하라고 안내한다. 지금 읽은 미국 사이트 목록을 모든 나라의 모든 병에 붙일 수도 없다.
그래도 처음 가정에는 금이 간다. 이 두 제품을 같은 원액에 희석액만 다르게 넣은 버전이라고 당연하게 취급할 근거는 부족하다. 향 설명의 강조점도, 공개 목록도 다른데 물의 양만 계산하고 끝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EDP와 EDT가 서로 다른 배합이라고 판정한 것은 아니다. 지금 책상 위에 올라온 서류는 블루 드 샤넬 두 병의 서류다.
농도 안내 옆에 지속시간 성적표는 없다
그러면 오드퍼퓸이 더 오래 가느냐. 높은 농도라는 설명은 판단의 한 단서가 될 수 있지만, 라벨만으로 이 두 병의 지속시간 순위를 확정할 수는 없다. 확인한 공식 제품 설명에는 같은 조건에서 비교한 시간별 측정값이 없다. ‘EDT 몇 시간, EDP 몇 시간’이라고 이 제품들의 빈칸을 채워 넣을 자료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 글은 두 향을 직접 뿌려 비교한 시향기도 아니다.
농도 안내를 읽고 지속시간 시험까지 끝난 셈 치면 서류 하나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앰버와 머스크를 강조한다는 소개 역시 몇 시간 더 남는다는 측정 결과로 바꿀 수 없다. 오래 남는지, 처음에 얼마나 강하게 느껴지는지, 내가 좋아하는 향이 나중에도 남는지는 따로 확인할 질문이다. 앞의 답을 뒤의 답으로 대납시키지 않는 편이 낫다.
같은 이름의 EDT를 좋아했다면 EDP를 ‘그 향의 오래가는 옵션’으로 바로 주문하기 전에 두 버전을 각각 맡아볼 이유가 있다. 정확한 제품명과 농도 표기를 먼저 맞추고, 첫 느낌만 고르지 말고 시간이 지난 뒤 남은 향도 다시 비교해 보는 방식이다. 지속성이 우선이면 남아 있는 정도를, 향의 취향이 우선이면 남은 향 자체가 좋은지를 구분해서 본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보편 순위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다음 시향에서는 종이부터 구별해 두면 되겠다. 이름만 적으면 둘 다 블루 드 샤넬이다.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오늘 일을 키웠다.
출처
- BLEU DE CHANEL Eau de Parfum Spray, Ref.107360
- BLEU DE CHANEL Eau de Toilette Spray, Ref.107460
- Eau de parfum ou Eau de toilette ? — Maison Francis Kurkdjian
자료 확인: 2026년 10월 4일. 확인 시점은 자료의 발행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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