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라고 써 있으면 왠지 계약서 같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내보내겠다는 약속. 그런데 종이 도안을 뽑아 자를 대는 순간 계약 당사자가 늘어난다. PDF, 인쇄창, 프린터. 화면에서 누른 100% 하나가 셋의 도장을 전부 받은 건가.
여기서 종이에게 두 가지 부탁을 구분해야 한다. 내용이 끝까지 보이게 해달라는 부탁과, 선의 길이를 그대로 내보내달라는 부탁. 작은 종이에 큰 도안을 넣으면 둘이 싸울 수 있다. 도안을 줄여 모두 넣을지, 크기를 지키고 밖으로 나간 부분을 포기할지. 프린터는 이 협상을 ‘맞추기’ 같은 점잖은 이름으로 받는다.
‘그대로’에 사인한 사람
Adobe Acrobat의 ‘실제 크기’는 비율을 조정하지 않는 쪽이다. 다만 용지에 맞지 않는 페이지나 선택 부분은 잘린다. 종이가 모자란다고 도안까지 몰래 늘어나 주는 계약은 없다. 가장자리가 사라졌다고 곧바로 “축소됐다”고 판정하면 엉뚱한 항목을 고치게 된다.
‘맞추기’는 다른 조건에 사인한다. 선택한 용지의 인쇄 가능 영역에 들어가도록 페이지를 줄이거나 키운다. 내용이 모두 들어가는 대신 원래 길이를 그대로 유지하는 선택은 아니다. 길이가 중요한 도안과, 한눈에 읽기만 하면 되는 안내문이 같은 버튼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이름이 비슷한 ‘큰 페이지 축소’도 별도 계약이다. 큰 페이지는 선택한 용지에 맞게 줄이지만 작은 페이지는 키우지 않는다. ‘맞추기’와 같은 뜻으로 외워두면 작은 원본을 뽑을 때 차이를 놓친다. ‘사용자 지정 비율’은 입력한 백분율로 크기를 바꾸는 항목이다. 숫자를 직접 썼다는 사실이 원본 길이의 증명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종이를 보고 먼저 묻자. 선 자체가 짧아졌나, 선은 그대로인데 끝이 없어졌나. 전자는 배율을, 후자는 잘림을 확인할 실마리다. 둘이 함께 의심되면 한쪽만 고쳤다고 끝내지 않는다. 도안 전체가 작아졌는지와 가장자리 내용이 빠졌는지를 따로 본다.
뒤쪽 창구에도 도장이 있다
인쇄창이 ‘실제 크기’에 사인했어도 확인은 끝나지 않았다. 프린터 드라이버에도 크기를 바꾸는 설정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HP가 제공하는 Samsung M408x Series 설명서는 ‘원본 문서 크기’를 고른 뒤 백분율로 확대·축소하는 기능과, ‘출력 문서 크기’를 골라 용지에 맞추는 기능을 따로 설명한다. 앞 창구에서는 그대로 보내달랬는데 뒤 창구에는 맞춰달라고 적혀 있는지 볼 필요가 있다.
이 모델 설명서에는 출력 문서 크기에서 용지 크기를 선택하면 백분율 변경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도 있다. 두 버튼을 다 만져야 더 정밀해지는 방식이 아니다. 이건 해당 기종의 예시다. 다른 프린터의 메뉴 이름과 위치까지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 모델 설명서를 확인한다.
재인쇄 전에는 서류를 앞에서부터 되짚으면 된다. 먼저 원본 PDF의 페이지 크기와 제작자가 적은 인쇄 조건을 확인한다. 다음은 실제 넣을 용지와 인쇄창에서 선택한 용지. 그다음 PDF 뷰어의 크기 옵션, 마지막은 프린터 속성의 배율·용지 맞춤 설정이다. ‘A4로 뽑을 거니까 파일도 A4겠지’라는 추측은 이 줄에서 잠깐 내려놓는다.
길이가 중요한 작업이면 전체를 다시 뽑기 전에 확인용 한 장을 제안한다. 도안에 검사용 길이 표시가 있다면 그 부분을 자로 잰다. 직접 확인선을 마련할 수 있다면 원본에서 길이를 정한 10cm 선 같은 것도 방법이다. 여기의 10cm는 검사 제안이지 이 글에서 실제로 뽑아 잰 결과가 아니다. 설정을 확인했다는 이유만으로 실물 길이가 정확하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표시한 길이와 출력 길이가 다르면 임의로 배율을 올리기 전에 원본·뷰어·드라이버를 다시 확인한다. 맞추기로 종이 안에 들어왔더라도 도안 치수까지 통과한 것은 아니고, 실제 크기로 길이를 지켰더라도 가장자리까지 들어왔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 도장은 자가 찍는다. 그 전에는 가위를 조금만 기다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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