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수성이 더 오래 걸리는 이유
수성은 지구에서 화성보다 가까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베피콜롬보는 2018년에 출발해 여러 행성을 스쳐 지나가며 8년 가까이 비행해야 했습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태양 쪽으로 내려가며 붙는 속도를 줄여 수성 궤도에 들어가기 위해 일부러 긴 길을 택한 것입니다.
수성으로 가는 일은 낙하보다 제동에 가깝습니다
지구와 우주선은 이미 태양 둘레를 빠르게 돌고 있습니다. 수성 쪽으로 가려면 안쪽으로 방향만 틀 게 아니라 지구에서 물려받은 공전 속도를 크게 줄여야 합니다.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중력은 우주선을 더 빠르게 끌어당깁니다. 너무 빠른 채 도착하면 수성에 붙잡히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연료통 대신 행성을 브레이크로 씁니다
필요한 감속을 엔진으로만 해결하면 연료가 너무 많이 듭니다. 관측장비를 실을 자리에 연료탱크가 앉게 됩니다. 베피콜롬보는 지구와 금성, 수성 가까이를 지나며 행성 중력으로 비행 방향과 속도를 조금씩 바꾸는 플라이바이를 반복했습니다. 우주 규모의 브레이크인데, 페달 대신 행성 옆을 정확히 스쳐야 작동합니다.
돌아가는 길이 연료를 아끼는 길입니다
지도에서 궤적만 보면 목적지를 두고 빙빙 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각 접근은 다음 감속을 위한 발판입니다. 작은 오차도 다음 행성과 만날 시점을 크게 틀어놓을 수 있어 위치와 속도를 수년 전부터 맞춰야 합니다. 시간을 더 쓰는 대신 우주선이 감당해야 할 연료를 줄인 셈입니다.
수성은 궤도뿐 아니라 열도 까다롭습니다
태양과 가까워 강한 햇빛과 복사열을 견뎌야 하지만 그늘 쪽 장비는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태양전지판도 태양을 정면으로 오래 바라보게 할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갈지와 얼마나 뜨거워질지를 동시에 계산해야 하니, 가까운 목적지가 쉬운 목적지는 아닙니다.
두 탐사선은 같은 장면을 다르게 봅니다
유럽과 일본이 만든 두 탐사선은 수성의 표면·내부와 자기장·주변 입자환경을 서로 다른 궤도에서 관측합니다. 같은 시기의 변화를 두 지점에서 보면 공간에 따른 차이와 시간에 따른 변화를 구분하기 쉬워집니다. 한 대를 덤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관측 기준점을 두 개 만든 것입니다.
8년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베피콜롬보의 긴 비행은 추진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느려지기 어려워서 생겼습니다. 우주에서는 직선이 가장 싼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수성 탐사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도착했을 때 얼마나 알맞게 느려져 있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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