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평생 얼마나 자랄까. 안 자르고 놔두면 발목쯤 오려나. 머리 위에 얹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니, 아무리 많아도 그리 대단한 양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머리에 남은 것과 평생 생산한 것은 다르다. 미용실 바닥에 버린 것, 배수구에 걸린 것까지 전부 모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평생 쓴 휴지를 오늘 화장실에 걸려 있는 한 롤로 짐작하면 안 되는 것처럼.
몸에서 난 털은 빼고 머리카락만 세어보자. 한 올이 얼마나 자라는지부터 따져서, 한 사람의 평생을 지나 전 인류까지. 어디까지 가는지는 일단 계산해보고 생각하자.
머리카락은 한 달에 얼마나 자랄까?
성장 중인 머리카락 한 올은 한 달에 대략 1cm, 하루로 치면 약 0.3mm 자란다. 10만 올이 전부 이 속도로 자란다고 놓으면, 한 달 동안 머리 전체에서 새로 나온 길이를 합쳐 1km다. 1년이면 12km다.
머리카락은 피부 속 작은 주머니인 모낭에서 만들어진다. 숱은 두피의 넓이와 모낭의 밀도, 나이와 탈모 등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는 성인 두피를 설명하는 연구에서도 쓰는 10만 올을 계산 기준으로 잡자. 모든 사람의 머리에 정확히 그만큼 있다는 뜻은 아니다.
월 1cm 역시 개인차가 있는 성장 속도를 간단히 다루기 위한 대표값이다. 우선 10만 올이 모두 쉬지 않고 자라는 머리를 하나 상상하자. 실제 모낭에는 쉬는 시기도 있는데, 그 얘기는 바로 다음 질문에서 하자.
출처: Cleveland Clinic, 모낭과 모발 성장 · Gao 외, 성인 두피와 모발의 피지 이동 연구 (2019)
1cm × 10만 올 = 10만cm = 1km.
한 올씩 보면 정말 성의 없는 속도다. 한 달을 줬는데 겨우 1cm. 그런데 이걸 10만 개가 동시에 하고 있다. 미용실에서 “끝만 1cm 다듬어 주세요”라고 하면, 이 머리에서는 1km를 잘라내 달라는 주문이 된다. 손님은 점잖게 앉아 있고, 바닥에는 킬로미터가 떨어진다.
하루 분량도 따져보자. 한 올이 1년에 자라는 12cm를 365일로 나누면 하루 약 0.33mm다. 앞의 0.3mm를 조금 더 자세히 쓴 값이다. 10만 올을 합치면 하루 약 33m. 달마다 날짜가 다르니, 하루치는 이렇게 연간 분량을 나눠 잡는다.
그럼 한 시간에는 얼마나 나올까. 하루 약 33m를 다시 24시간으로 나누면 약 1.4m다.
이 계산대로라면 한 시간마다 내 머리 위의 작은 구멍들에서 시커먼 뭔가가 합계 1.4m씩 밀려 나온다는 얘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1m짜리 자로는 한 번에 다 잴 수도 없는 검은 실을 뽑아내고 있다. 한 가닥으로 나오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한 사람이 평생 기른 머리카락을 모두 이으면 얼마나 길까?
방금 잡은 조건으로 80년을 계산하면 960km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1년에 12km씩 나온다고 놓았으니, 여기에 80을 곱하면 된다.
연간 12km × 80년 = 960km.
80년은 ‘평생’을 숫자로 바꾸기 위해 정한 계산 기간이다. 모든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동안 숱과 성장 속도도 그대로라고 놓는다.
물론 머리카락 한 올이 80년을 버티는 것은 아니다. 모낭은 털을 자라게 하는 성장기와 성장을 멈추고 쉬는 시기를 거친다. 털이 빠진 뒤 새 털이 그 자리를 잇기도 한다. 지금 세는 것은 현재 머리에 남은 길이가 아니라, 잘리고 빠진 것까지 합친 여러 세대의 총생산량이다.
960km는 이 교대 과정에서 휴식기를 빼지 않고 계산한 값이다. 나이에 따른 숱과 성장 속도의 변화도 반영하지 않았다. 실제 개인의 평생 생산량이라기보다, 휴식도 감산도 없는 모형 공장의 80년치다.
출처: Cleveland Clinic, 모발의 성장 주기와 변화
그래도 좀 이상하다. 머리에 달고 살던 것을 전부 이었더니 자동차로도 한참 가야 할 길이가 나왔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빗고 있었는데.

960km의 머리카락은 얼마나 무거울까?
지름을 70~80마이크로미터, 밀도를 1㎤당 1.32g으로 놓으면 약 4.9~6.4kg이다. 960km라는 길이를 생각하면 놀랄 만큼 가볍다. 길이는 자동차로 한참 가야 하는데, 무게는 들고 옮길 만하다.
이유는 머리카락이 그만큼 가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미터는 1mm의 1,000분의 1이다. 한국인 모발 연구를 참고해 고른 70~80마이크로미터는 0.07~0.08mm. 자에 표시된 1mm 눈금 사이도 좁은데, 머리카락 한 올의 굵기는 그 간격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굵기는 사람마다, 같은 머리 안에서도 다르다. 그래서 하나의 값 대신 작은 범위를 잡았다. 70~80마이크로미터는 이번 계산에 넣을 예시 굵기이지,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구간은 아니다.
머리카락을 아주 가느다란 원기둥으로 보면 무게도 계산할 수 있다. 싹둑 잘라 끝에서 본 단면의 넓이에 길이를 곱하면 부피가 나온다. 여기에 밀도를 곱하면 무게다. 밀도는 같은 부피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여기서는 사람 모발을 측정한 연구를 참고해 1㎤당 1.32g을 계산값으로 쓴다.
이렇게 구한 머리카락 1km의 무게는 약 5~7g이다. 굵기가 달라지면 단면적도 달라지므로 무게에도 차이가 난다. 이 반올림 전 값에 960을 곱한 것이 앞의 4.9~6.4kg이다.
출처: Müllner 외, 모발의 구조와 밀도 연구 (2020) · Yoo 외, 한국인 두피 모발 특성 연구 (2002)
길이는 1km인데 무게는 몇 g. 긴 물건에 대한 예의가 없다. 80년치를 전부 모아도 10kg짜리 쌀 한 포대보다 가볍다.
머리를 밀면 체중은 얼마나 줄어들까?
머리카락 10만 올이 전부 10cm씩 남아 있다면, 같은 굵기와 밀도 조건에서 전체 무게는 약 50~70g이다. 아주 바짝 밀어도 줄어드는 무게는 대략 그 정도다. 남기는 길이만큼은 덜 빠지고.
10cm는 비교를 위해 정한 길이다. 짧은 머리부터 긴 머리까지 다 따지면 경우가 너무 많아지니, 머리 하나를 정해 놓고 보는 것이다. 전 인류의 평균 머리 길이라는 뜻은 아니다. 같은 숱과 굵기라면 길이가 두 배일 때 무게도 두 배가 된다.
10cm × 10만 올을 이으면 총 10km다. 앞에서 구한 1km당 무게를 적용하면 수십 g밖에 안 된다. 평생 960km를 생산했다고 해도, 지금 체중계에 함께 올라가는 것은 머리에 남은 10km뿐이다. 미용실 바닥에 버린 나머지는 체중계가 책임지지 않는다.
계체량을 앞두고 목표 체중까지 수십 g을 더 줄여야 한다면 얘기가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500g을 해결하려고 그 길이의 머리를 밀면, 체중 문제는 거의 그대로인데 헤어스타일만 결연해진다.

전 인류의 머리카락을 모두 이으면 얼마나 길까?
80억 명이 각각 머리카락 10만 올을 갖고 있고, 한 올의 길이가 모두 10cm라면 총 800억km다. 빛도 약 3.1일을 가야 하는 거리다.
80억 명 × 10만 올 = 800조 올. 여기에 한 올의 길이 10cm를 곱하면 된다. 한 사람의 현재 분량이 10km였으니, 10km에 80억을 곱해도 같은 답이 나온다.
80억은 규모를 비교하기 좋게 둥글게 잡은 인구다. 정확한 오늘의 인구 수가 아니다. 아기와 어른, 숱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을 일단 같은 머리 80억 개로 바꿔 놓았다. 이렇게 한 사람의 계산을 인류로 넓혀보는 것이다.
계산에 쓰는 빛의 속도는 진공에서 초속 299,792,458m다. 머리 길이처럼 편의상 고른 값이 아니라, 정확한 값이 정해진 물리 상수다. 대략 초속 30만km인 이 속도로 800억km를 나누면 약 3.1일이 나온다.
출처: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용실 바닥을 쓸고 있었는데 갑자기 빛의 이동 시간을 따지고 있다. 지구에서 한꺼번에 머리를 깎아 우주로 쭉 펴놓는다고 상상하면, 맨 앞에서 빛을 쏜 뒤 사흘을 자고 일어나도 아직 끝에 닿지 않는다.
실제로 수거하고 잇고 펼치는 방법은 생각하지 말자. 그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 글보다 먼저 인류가 지친다.
머리카락이 나는 두피 면적은 얼마나 될까?
이 계산에서 기준으로 잡은 한 사람의 두피 면적은 약 650㎠다. A4 용지 한 장보다 약 4% 넓은 정도다.
650㎠는 성인 두피를 설명하는 연구에서 사용한 값이다. 어린이까지 포함한 전 인류의 실측 평균은 아니다. 여기서는 머리카락이 자라는 땅의 크기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A4 용지는 가로 21cm, 세로 29.7cm여서 면적이 623.7㎠다. 한 장을 평평하게 놓고 조금 더 넓혀보면 된다. 같은 650㎠를 정사각형으로 만들면 한 변이 약 25.5cm다. 둥근 두피를 펼쳤다고 상상하고 넓이만 비교하는 것이다.
출처: Gao 외, 성인 두피와 모발의 피지 이동 연구 (2019) · Epson, A4 용지 규격
이 면적을 80억 명에게 일괄 적용하면 520㎢다. 서울 전체 면적의 약 86%다. A4 한 장쯤 되는 것을 모았더니 도시가 됐다. 숫자를 곱하는 동안 손은 별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결과만 자꾸 멀리 간다.
출처: 서울특별시 열린데이터광장, 서울의 100대 통계
평면 위에 그 면적만큼 머리카락을 심었다고 상상해보자. 아까 잡은 길이 10cm를 가져오면 도시만 한 검은 털밭이 된다. 이번에는 그 털밭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 넓은 곳에 가르마가 바뀐다.
나무도 잔디도 아닌데 초록색이 하나도 없는 도시 규모의 식생. 인공위성 사진을 보다가 저런 곳을 발견하면 확대하기 전에 일단 창을 닫고 싶다.

전 인류의 머리카락은 1년에 얼마나 자랄까?
한 사람당 연간 12km, 80억 명이면 1년에 960억km다. 처음의 쉬지 않는 모형 공장을 전 인류에게 적용한 계산이다.
이번에는 현재 머리에 남아 있는 10cm 대신, 한 올이 1년 동안 새로 자라는 12cm를 곱한다. 지금 보관 중인 분량과 앞으로 생산할 분량을 구분하는 것이다.
10만 올 × 연간 12cm × 80억 명 = 연간 960억km.
아까 그 도시만 한 털밭이 가만히 놓여 있는 게 아니었다. 계속 생산 중이었다.
일 년 치 머리카락으로 행성의 공전궤도를 감을 수 있을까?
이 모형에서는 수성부터 해왕성까지 여덟 행성의 공전궤도를 한 바퀴씩 감고도 남는다. 필요한 길이는 약 636억km. 일 년 치 960억km에서 빼면 약 324억km가 남는다.
감는 대상은 행성의 몸통이 아니라,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길이다. 지구 한 바퀴와 지구 공전궤도 한 바퀴는 규모가 전혀 다르다. 이제 머리카락을 두르려는 쪽은 후자다.
실제 궤도는 타원이지만, 여기서는 태양과 각 행성의 평균 거리를 반지름으로 잡은 원으로 간단히 계산한다. 정확한 궤도를 재현하기보다 길이의 규모를 비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의 둘레는 반지름 × 2 × 원주율. 여덟 행성에 각각 적용한 뒤 더하면 약 636억km가 나온다.
출처: NASA JPL, 태양계 거리 기준표 · NASA, 행성 궤도와 케플러 법칙
그렇게 잡은 지구 궤도는 약 9.4억km다. 일 년 치로 약 102바퀴를 돌 수 있다. 해왕성 궤도는 한 바퀴에 약 282억km. 그 먼 궤도도 세 바퀴 넘게 감는다.
여덟 궤도를 다 감고 남은 324억km만으로도 해왕성 궤도에 한 바퀴 더 두르고 남는다. 태양계에 가르마를 타고 남은 머리카락을 어디에 보관할지 고민하는 지점까지 왔다.
가만히 있어도 모형 속 머리카락은 또 자란다. 방금 우주에 써버렸으니 다 떨어졌겠거니 하면 곤란하다. 내년 물량이 올라오고 있다.
여태 우리는 머리카락을 더했다. 한 올에 한 올을 붙이고, 사람에 사람을 보태다가, 어느새 태양계까지 끌고 왔다. 별것 아닌 줄 알았던 머리카락이 숫자로 바뀌자 감당하기 싫은 규모가 됐다. 배수구에서 시작한 코스믹 호러다.
자, 이제 가장 큰 규모의 무언가를 마주할 차례다.
80억 명 각각의 머리카락 개수를 전부 곱하면 얼마일까?
80억 명 각각의 머리카락 개수를 전부 곱해보자. 이번에는 전원 10만 올이라는 가정을 풀고 사람마다 실제 개수를 넣는다. 두근두근 얼마나 엄청난 우주적 규모의 숫자가 나올까.
정답은…..
0이다.
코스믹 호러도 대머리 앞에선 어쩔 수 없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