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없다는 사람이 점심을 먹는다. 지켜보는 쪽에서는 그 양이면 유럽인 세 사람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식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말린 감 한 접시가 더 들어간다.
그리고 식객이 말한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입맛이 없었다고.
입맛이 돌아오는 날에는 얼마나 먹었을까.
1895년 출간된 아널드 헨리 새비지 랜도어의 《Corea or Cho-sen》에 나오는 일화다. 음식이 사라지는 속도를 보고 놀라는 장면은 있다. 카메라와 구독 버튼이 없을 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결론을 내리고 싶어진다. 한국인은 먹방 이전부터 대식가였다고. 일단 그 기록을 조금 더 따라가 보자. 장면은 선명한데, 장면이 대표하는 사람의 수는 아직 모른다.
랜도어와 버드가 본 식사, 놀랄 만은 했다
랜도어는 한 한국인이 자신이 보기에 평균적인 유럽인 세 사람을 만족시킬 만한 점심을 먹었다고 썼다. 이어 말린 감을 먹으면서 허리띠를 느슨하게 하고, 결국 접시를 비웠다는 대목이 따라온다.
‘세 사람분’은 식판을 저울에 올려 얻은 값이 아니다. 랜도어의 비교와 놀라움이 들어간 표현이다. 그래도 그가 무엇에 놀랐는지는 분명하다. 식사량도 식사량인데, 그 뒤에 붙은 “입맛이 없다”는 설명이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곶감 대목을 조금 더 읽으면 장면이 또렷해진다. 그 사람은 한두 개만 먹겠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랜도어가 기록한 끝은 빈 접시였다. 몸이 좋지 않았다는 말은 그 뒤에 나온다. 듣는 사람에게는 식사 내내 보았던 양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설명이다.
이 장면에서 랜도어와 식객은 같은 식사를 서로 다르게 보고 있다. 한쪽은 이미 충분히 많이 먹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오늘 제대로 입맛이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행기가 포착한 것은 음식의 양과 함께, 그 양을 판단하는 기준의 차이다.
이사벨라 버드의 1898년 책 《Korea and Her Neighbours》에도 비슷한 인상이 남아 있다. 노동자의 쌀 한 끼를 쿼트라는 부피 단위로 설명하고, 한 끼에 3파운드가 넘는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고 적었다.
쌀 대목은 원문의 계량 조건을 현대 공깃밥 몇 개로 딱 잘라 옮기기 어렵다. 고기 대목 역시 버드가 보았다고 쓴 사례다. ‘노동자’라는 말이 나온다고 바로 당시 노동자의 평균 식사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쌀과 고기 이야기를 한꺼번에 기억하면 밥도 엄청나게 먹고 고기도 엄청나게 먹는 한 사람의 식사가 머릿속에 생기기 쉽다. 그러나 서로 다른 대목을 합쳐 새로운 식탁을 차릴 수는 없다. 저자가 한 끼로 제시하지 않은 것을 우리가 한 끼로 묶으면, 원문에 없던 대식가가 만들어진다.
두 여행자가 큰 식사량에 주목했다. 그 사실은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만난 사람들을 전국 대표 표본으로 바꾸는 순간, 여행기에 맡긴 일이 너무 많아진다.
더구나 두 책에는 낯선 식습관을 탐욕이나 과식으로 규정하는 저자들의 시선도 섞여 있다. 많이 먹는 장면은 읽되, 그들의 평가까지 한국인의 성격 설명으로 받아올 필요는 없다.
기록 속 식객에게는 곶감이 추가됐다. 우리 해석에는 전국민이 추가되기 쉽다. 두 번째 추가는 조심해야 한다.
옛 밥그릇이 크면, 생활도 같이 봐야 한다
옛 식사 사진과 밥그릇도 이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한다. 이데일리가 한국민속극박물관 자료로 소개한 조선의 식사 엽서에는 큰 밥그릇이 등장한다. 오늘의 작은 공깃밥에 익숙한 눈에는 그릇부터 낯설다.
그렇다고 사진 한 장에서 “옛날 사람은 지금보다 몇 배 먹었다”는 계산이 바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릇의 크기, 담긴 양, 실제 먹은 양은 서로 다르다. 어느 시기, 누구의 그릇인지도 따져야 한다. 큰 그릇 하나가 조선의 전국 공통 규격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랜도어는 식기에 관한 설명도 남겼다. 크기가 다른 놋그릇을 소개하면서 가장 큰 것은 국과 밥에, 그다음 것은 술과 물에, 작은 것은 채소와 소스류에 쓴다고 적었다. 그가 묘사한 상에서는 주식이 들어가는 그릇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큰 그릇을 오늘 식탁의 다른 구성은 그대로 둔 채 밥만 늘린 것으로 상상하면, 옛날 사람의 식사가 더 기이해진다. 그릇이 맡은 몫도 달랐다고 보면 질문이 바뀐다. “저걸 어떻게 다 먹었지?” 다음에 “그 밥이 식사의 어느 만큼을 맡았지?”가 따라온다.
크기를 보며 감탄한 뒤에는 그 밥으로 무엇을 했는지도 봐야 한다. 곡물 중심의 식사에서 밥은 지금보다 식탁의 큰 몫을 맡았다. 밭일과 운반처럼 몸을 쓰는 일, 고기와 다른 식품을 구할 수 있는 형편도 오늘과 달랐다.
버드의 기록에도 여러 곡물과 농작업이 등장하고, 가난한 사람은 식사 횟수부터 다르다고 적혀 있다. 같은 시대라고 모두 같은 양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버드는 아주 가난한 사람은 하루 두 끼를 먹고, 형편이 되는 사람은 세 끼나 네 끼를 먹는다고 썼다. 이 역시 그녀가 제시한 당시 생활의 묘사다. 큰 한 끼를 읽은 같은 책 안에, 끼니를 마련할 형편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같이 들어 있다.
더 넉넉한 사람들의 식사 사이에는 과일과 견과, 단것 같은 음식도 등장한다. 옛 식탁을 쌀만 있고 다른 음식은 전혀 없는 풍경으로 만들 이유도 없다. 무엇을 얼마나 자주 먹을 수 있었는지가 사람마다 달랐다는 쪽이 기록에 더 가깝다.
육체노동이 많았으니 큰 식사가 필요했을 가능성은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그것 하나로 모든 장면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여행자가 기억한 넉넉한 한 끼와,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던 사람의 하루는 함께 놓고 봐야 한다.
농사일과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하루를 떠올리면 밥의 역할도 다르게 보인다. 한 끼를 든든히 먹는 것은 식후에 편히 쉬는 일과만 연결되지 않는다. 먹고 나서 다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음 일을 버티는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많이 먹는 모습을 칭찬하거나 놀라는 눈과,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하는 형편은 한 사람 안에서도 겹친다. 그래서 큰 식사량이 눈에 띄었다는 기록을 살리는 것과 그 시대가 풍족했다는 결론은 별개다. 접시가 비었다고 살림 형편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원래 많이 먹는 민족’이라는 설명은 편하다. 밥을 마련하는 사람의 형편과 밥을 먹고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빠져서 편한 것이다.
쌀은 줄었다, 식탁의 질문은 늘었다
오늘의 숫자를 가져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양곡소비량조사에서 가구부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3.9kg이었다. 전년의 55.8kg보다 줄었다.
쌀만 보면 “한국인은 예전부터 계속 더 많이 먹는다”는 직선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숫자가 음식 전체의 양이나 열량이 줄었다는 뜻도 아니다. 쌀 소비량에 커피와 치킨과 케이크까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의 식탁을 떠올려 보면 밥공기 밖에서 결정할 것이 많다. 식사 뒤에 카페를 갈지, 간식은 무엇으로 할지, 밤에는 배달을 시킬지. 한 끼를 먹고 나서도 음식에 관한 선택이 남는다.
“밥 먹었으니 이제 됐다”와 “밥 먹었으니 커피 마시러 가자”는 식사 뒤의 풍경을 다르게 만든다. 카페에 가서는 음료를 고르고, 옆에 놓인 디저트를 볼 수 있다. 배가 고픈지와 별개로 같이 앉아 있을 장소나 먹어보고 싶은 것을 정하는 시간이 생긴다.
물론 버드의 기록에도 간식은 있었다. 옛날에는 밥만 먹다가 현대에 갑자기 다른 음식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 익숙한 고기집, 카페, 편의점, 배달 메뉴를 떠올리면 음식 선택이 하루 곳곳에 걸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옛날의 큰 한 그릇과 오늘의 넓은 선택지는 그래서 흥미로운 대비다. “옛날에는 한 그릇이 컸다면 지금은 선택지가 커졌다.” 식사량을 계산하는 공식은 아니지만, 먹는 문화의 달라진 모습을 설명하는 말은 될 수 있다.
먹방도 이쪽에서 볼 수 있다. 영상이 갑자기 한국인의 식욕을 만들어냈다고 하기보다,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거기에 말을 보태는 관심이 영상의 형식을 얻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옛 기록과 오늘의 먹방을 직접 이어주는 계보가 확인됐다는 뜻은 아니다.
랜도어의 일화에서 독자가 궁금해하는 것도 단순한 양만은 아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먹고 어떤 말을 했는가. 정말 입맛이 없었던 것인가. 더 먹을 수 있었던 것인가. 먹는 장면 뒤에 사람이 남으니, 보고 난 뒤에도 이야기가 이어진다.
확실한 것은, 잘 먹는 장면에 눈이 멈춘 사람이 오래전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 관심이 오늘은 재생 버튼 옆에 앉아 있다.
랜도어는 상대의 입맛이 없다는 말까지 기록했다. 댓글창이 있었다면 그 대목에서 꽤 바빴을 것이다.
그런데 먹는 이야기는 개인의 한 끼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혼식에 가도, 조문을 가도 음식이 나온다. 다음에는 많이 먹는 사람 대신, 찾아온 사람을 먹이는 쪽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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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A. Henry Savage Landor, Corea or Cho-sen (1895), Chapter IX
Isabella Bird, Korea and Her Neighbours (1898)
국가데이터처 2025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 2026-01-22
이데일리 2023-04-05, 한국민속극박물관 자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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